[스포츠] “감정이란 게 없었다”…과연 돌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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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의 여지 없는 KBO리그 역대 최고 소방수 오승환.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지만, 남은 시즌 동안 여전히 ‘현역’이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 통산 550세이브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사진 삼성 라이온즈]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투수 오승환(43)을 지난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났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마운드 위에서와 달리 옅은 미소로 대화를 이어간 그는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며 “아직 은퇴식을 하지 않은 만큼 언제든 호출받으면 마운드에 오른다는 각오로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삼성 구단은 “오승환이 은퇴를 결심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한국야구위원회(KBO) 및 타 구단과 논의해 정규시즌 남은 경기에서 은퇴 투어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의 등 번호(21번)는 이만수(22번), 양준혁(10번), 이승엽(36번)에 이어 삼성의 네 번째로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지난 7일에는 은퇴 기자회견도 했다.

오승환은 KBO리그의 최고 마무리 투수였다. 지난 2005년 프로 데뷔 이래 21년간 한국, 일본, 미국을 거치며 ‘특급 소방수’로 활약했다. 1096경기에서 64승54패와 함께 549세이브를 기록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오승환 이전에 500세이브 고지에 오른 투수는 메이저리그(MLB)의 ‘전설’ 마리아노 리베라(652세이브)와 트레버 호프만(601세이브) 둘 뿐이다. “오승환이 있어서 삼성은 8회까지만 야구를 하면 된다”던 류중일 전 삼성 감독 말은 전성기 그의 존재감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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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이대호에 이어 KBO 역대 3번째 은퇴투어를 앞둔 ‘끝판대장’ 오승환. 송봉근 기자

오승환은 “은퇴 이후 새 출발 계획을 정해두지 않았다. 글러브를 벗는 그 날까지는 선수로서의 삶에 충실히 임할 생각이다. 그게 바로 나다. (은퇴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550세이브에 도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돌부처·끝판대장 등 오승환을 수식했던 화려한 별명은 특유의 무표정이 주목받은 결과다. 오승환은 “내가 마운드에서 애써 표정을 감춰 온 거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전력을 다해 던졌다면 끝내기 안타를 맞아도 후회할 이유가 없다”며 “어떤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이고, 같은 상황을 다시 겪지 않도록 집중했다”고 말했다.

아쉬운 순간을 꼽아 달라고 부탁하자 조심스럽게 4년 전 도쿄올림픽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한국은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6-10으로 패해 메달을 놓쳤다. 6-5로 앞서다 8회 5실점 해 역전을 허용했는데, 그때 마운드에 오승환이 있었다. 그는 “올림픽은 후배 선수들에겐 병역 혜택(올림픽은 동메달 이상)이 걸린 무대이기도 하다”며 “후배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을 비울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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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야구 인생, 기억에 남는 팬도 많을 법했다. 잠시 고민하던 오승환은 “고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중식당 셰프인데,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 ‘한국 음식이 그립다’고 했더니 미국까지 날아와 얼큰한 짬뽕을 끓여줬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이어 “먼 곳까지 와준 것만도 고마운데 ‘맛은 제대로 내야 한다’며 조리도구와 음식 재료까지 모두 싸 들고 와 깜짝 놀랐다”며 “온갖 좋다는 보양식을 다 먹어봤지만, 그때 그 맛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뒤늦게나마 고마웠고 큰 힘이 됐다고 인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오승환은 삼성의 간판스타이자 전력의 핵이었다. 현재 KBO리그 최고령 선수다. 그는 동료나 후배보다 앞에 서지도 위에 군림하지도 않았다. 프로 무대의 동반자로 각자의 판단을 존중했다. 그는 “내가 선배라서, 잘 던진다고 해서, 내 말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라며 “모두가 자신만의 생존 해법을 통해 프로 무대를 밟았다. 그러니 ‘정답’이란 건 프로야구 선수 숫자만큼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후배에게 남겨줄 말조차 없는 건 아니다. ‘제2의 오승환’을 꿈꾸는 어린 후배에게 전하고픈 키워드를 부탁하자 “꾸준함”을 꼽았다. 한두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생각과 행동, 루틴까지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라는 거다. 그는 “잘 될 땐 루틴을 유지하다가도 실수하거나 슬럼프에 빠지면 곧장 다른 방법을 찾는 선수가 많다”며 “오직 야구만 생각하고 야구에 도움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 그 자체가 루틴이어야 한다. 루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지배해야 어떤 상황에서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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