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우크라에 “돈바스 넘겨주면 러와 평화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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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매우 큰 강대국이고 그들(우크라이나)은 그렇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 한 발언은 전날 열린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화협정 체결 제안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당초 기대했던 즉각적인 휴전은커녕 평화협정을 위한 트럼프의 영토 포기 요구에 직면했다. 유럽도 안보 보장만 이뤄진다면 영토 분할에 동의할 모양새다. 이에 3년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이 강대국 간 담판으로 약소국 국경선을 결정한 80년 전 ‘얄타 회담’의 재연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트럼프와 푸틴이 알래스카 회담에서 의견을 모은 내용은 세 가지다.

80년 전 얄타회담처럼…강대국 손에 맡겨진 우크라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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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 전쟁연구소(ISWW)]

▶휴전 없는 평화협정 체결 ▶우크라이나의 돈바스(루한스크·도네츠크) 지역 양보 ▶미국의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이다. 트럼프는 18일 미국을 방문하는 젤렌스키를 겨냥해 “러시아의 요구에 우크라이나가 응해야 한다”며 “잘되면 푸틴까지 포함한 3자 회담을 22일 갖기 원한다”고 압박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휴전 제안을 거부하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전선에서 밀리는 젤렌스키는 지난 3월 트럼프가 자신과 합의한 ‘조건 없는 30일간 즉각 휴전’을 푸틴에게 관철할 거로 기대했다. 하지만 추가 제재로 푸틴을 압박하기는커녕 평화협정 논의를 명분으로 러시아의 영토 확보 공세까지 용인했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전쟁을 계속할 시간을 벌어줬다”(뉴욕타임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돈바스 양보는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에서 철수하면 헤르손·자포리자 등에선 현재 전선 기준으로 공격을 멈추겠다는 게 푸틴 제안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로선 교통의 요지인 도네츠크를 뺏길 경우 러시아에 직통 침공로를 내주는 셈이다.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돈바스 양보 등) 러시아의 요구는 (수도) 키이우 포기 요구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의지할 카드는 역설적으로 트럼프다. 우크라이나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꿈쩍하지 않던 푸틴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게 트럼프라서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찰스 리치필드 부국장은 “푸틴과 가장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트럼프”라며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트럼프를 통해 협력해야 할 운명”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로선 지난 2월 면박을 당한 백악관 노딜 회담과 같은 트럼프와의 정면충돌은 피하면서 실리를 챙겨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이에 젤렌스키가 18일 회담에서 영토 문제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FT가 전했다. 유럽 정상들도 젤렌스키와 동행한다.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를 “아빠(Daddy)”로 칭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을 비롯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트럼프의 ‘골프 친구’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관건은 안보 보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유럽 정상들과의 통화에서 유럽 평화유지군에 군사·재정을 지원하는 등의 ‘안보 보증 패키지’ 검토 가능성을 밝혔다고 전했다. 양측은 또 나토 조약 5조와 유사한 집단 안보 체제를 논의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나토 회원국에 대한 침략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하는 조약 5조처럼, 러시아가 재침공할 경우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에 참여한 국가 전체가 함께 대응한다는 것이다. 유럽은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 영토 양보는 없다”던 기존 입장도 바꿀 태세다.

미국·러시아·유럽 등에 의해 우크라이나 영토가 재편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18일 백악관 회담 후에도 우크라이나가 배제된다면 1945년 미국·영국·소련 등이 결정한 얄타 체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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