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난 여기가 좋았어”… 요즘 MZ, 책보며 밑줄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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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피프티북스에서 만난 존 케닉 작가의 책 『슬픔에 이름 붙이기』(윌북). 방문객들이 책 속 문장에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밑줄을 그어두었다. 최혜리 기자

책장 끝에 인덱스 테이프가 붙어있고, 문장에는 여러 번 밑줄이 그어져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서점 피프티북스에 진열된 책들은 모두 이런 독서 흔적이 남아있다. 한 책을 여러 명이 돌려 읽는 ‘교환독서’의 기록이다.

지난 12일 방문한 피프티북스에선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더우면 벗으면 되지』(주니어김영사)에 붙은 인덱스 테이프들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의 불행을 바란다면/파도가 밀려오는 물가에다 쓰면 되지”라고 적혀있는 장에 “‘이거다’ 싶은 최고의 방법”, “나도 해봐야지”, “아주 귀여운 생각이다!” 등 공감하는 문장이 댓글처럼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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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서점 ‘피프티북스’의 모습. 최혜리 기자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교환독서가 유행하고 있다. SNS에서 시작된 문화가 오프라인으로 퍼져나가며 교환독서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무인서점에 방문하는 이들도 늘었다.

교환독서는 ‘여러 사람이 같은 글이나 책을 돌려가며 읽는다’는 의미, 윤독(輪讀)이란 용어로 불려 온 독서법이다. 최근의 교환독서는 그보다 다양하게 해석된다. 원래 의미처럼 한 권의 책을 돌려 읽으며 감상평을 쌓아가거나 독서 흔적을 남긴 책들을 교환하는 것은 물론, 메모를 남긴 책 사진을 교환하는 방식으로도 진행된다. SNS 속 ‘교환독서 후기’엔 “상대방의 메모가 기다려진다”, “생각이 확장되는 기분”이라는 평가가 다수다.

이지혜 문화평론가는 “교환독서는 실천이 간편하며, 감정 공유가 직관적”이라며 “독서모임을 하고, 굿즈를 사거나 SNS에 기록을 올리는 등 책을 통해 관계를 맺고 감정을 확장하는 최근 독서문화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출판사도 책을 알리는 수단으로써 ‘교환독서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창비는 지난 5월 북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를 돌려 읽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대문학은 지난 7월 정해연 작가의 소설 『매듭의 끈』으로 교환독서 서평단을 열고, 지난 5일 김혜정 작가의 소설 『돌아온 아이들』을 통해선 교환독서할 온라인 상대를 매칭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최근엔 작가와 독자가 직접 책을 교환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작가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책 『도시관찰일기』(반비)에 독자들의 메모를 받고, 직접 답하는 참여형 이벤트를 열었다. 독자가 메모를 적은 책을 출판사로 보내면, 작가가 메모에 답을 남겨 독자에게 다시 책을 발송하는 식이다.

하나의 책장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교환독서를 즐길 수 있는 ‘무인(無人)’ 서점에 방문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참여형 지도인 ‘함께 만드는 동네서점 지도’에 따르면 주인 없이 열려있는 무인서점은 현재 전국에 약 20개 정도. 이들 중 상당수가 사용자들이 교환독서를 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 공간을 통째로 대여한다.

지난해 11월 개업한 무인서점 피프티북스는 4평 남짓한 공간을 대여하고, 그 시간 동안 대표가 선별한 5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인문, 소설, 시, 에세이부터 그림책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1인 기준으로 2시간 동안 서점을 대여하는 비용이 2만 5000원, 읽다가 마음에 드는 서적은 새 책으로 구매도 가능하다. 피프티북스의 박태희 대표는 “대부분 고객이 20·30대로, 혼자 오는 사람도 많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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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거나 살 수 있는 무인서점 ‘시요’. [사진 시요]

2022년 문을 연 서울 관악구의 ‘회전문서재’는 30분 단위로 서점을 빌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새고서림’은 공간 대관 형식은 아니지만 24시간 운영해 한밤중에도 방문이 가능하다. 2023년부터 운영 중인 경기 수원시의 무인 시집 서점 ‘시요’의 대표인 김고요 시인은 “원래 유인(有人)서점이었는데,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시집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무인서점으로 바꾸고, 교환독서를 할 수 있도록 책을 빼두니 방문객이 늘고 재방문수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특히 시는 타인의 후기와 함께 읽으면 의미가 쉽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어, 교환독서에 적합한 장르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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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거나 살 수 있는 무인서점 ‘시요’. 윤독회도 열고 있다. [사진 시요]

이지혜 평론가는 “교환독서가 무인서점이라는 공간의 특성과 결합해 새로운 독서 경험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며 “개인 공간을 중시하면서도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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