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임시장 테마파크 멈춰 세우더니…남원시, 400억대 빚폭탄 위기 [이슈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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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문을 연 전북 남원시 어현동 남원테마파크 내 모노레일. 지난해 2월 휴업 이후 운영이 중단됐다. 사진 남원테마파크㈜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도 패소  

전북 남원시가 400억원대 ‘빚폭탄’을 떠안게 됐다. 전임 시장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며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만든 테마파크가 문을 연 지 2년도 안 돼 닫자 대주단(돈을 빌려준 금융기관 등이 모인 단체)이 남원시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1·2심 잇달아 대주단 손을 들어주면서다.

17일 남원시에 따르면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민사부(부장 박원철)는 지난 14일 “이 사건은 피고(남원시)가 사용·수익 허가 신청 단계부터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대체 사업자 선정을 위한 최소한의 시도도 하지 않은 사안”이라며 남원시가 대출 원리금 408억원과 지연 이자(연 2.63~3.85%)를 대주단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민간 사업자인 남원테마파크㈜의 대출 원금·이자를 남원시가 전액 보증한다는 취지의 2020년 실시협약(MOA)을 근거로 “남원시와 남원시의회 심사와 동의를 거쳐 대출 약정이 체결됐다”고 판단했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연 12%의 지연손해금(채무자가 금전 채무를 기한 내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손해배상금)까지 적용하면 남원시가 대주단에 물어야 할 빚은 48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테마파크에 대한 남원시의 평가는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데도 시장이 바뀌면서 ‘관광 상품’에서 ‘애물단지’로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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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테마파크 내 집와이어. 사진 남원테마파크㈜

최경식 “사업성 부풀려졌다” 협약 변경 추진

남원시는 전임 이환주 시장 때인 2020년 6월 남원테마파크㈜와 ‘남원 관광지 민간 개발 사업(모노레일 및 어드벤처 시설 설치 사업)’ 실시협약을 맺었다. 시설물을 지어 남원시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남원테마파크㈜가 20년간 운영권을 갖는 조건이다. 자기 자본 20억원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405억원을 대출받은 남원테마파크㈜는 2022년 6월 어현동 일원에 2.44㎞ 길이 모노레일과 도심을 가로지르는 집와이어 등을 갖춘 놀이 시설을 완공했다. 6만6462m²(약 2만 평) 부지에 전통문화체험관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의 촬영 세트장 등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2022년 7월 새로 취임한 최경식 시장이 “사업을 재검토하겠다”며 개통식을 미루고 사용 승인 허가와 기부채납 등 행정 절차를 중단했다. 이 때문에 테마파크는 2022년 8월 말에야 임시 개장했다. 남원시는 2022년 9월 “전임 시장 때 시가 면밀한 수익성 검토 없이 업체가 빌린 405억원 채무 보증을 섰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모노레일 수요 예측 등 사업성이 부풀려졌다”며 담당 공무원 5명을 징계하고, 협약 변경을 추진했다.

이에 대해 남원테마파크㈜ 측은 “사업을 추진할 때 대주단이 사업성·신용 등을 엄밀히 평가해 돈을 빌려줬고, 계약서 초안은 행정 인력이 검토했다”며 “전임 시장이 오랫동안 공들인 사업을 하루아침에 뒤집은 최 시장이 행정의 연속성을 무시했다”고 반발했다. 이후 경영난에 시달리던 남원테마파크㈜는 2023년 9월 “실시협약을 해지하겠다”고 남원시에 통보한 뒤 지난해 2월 휴업에 들어갔다. 남원테마파크㈜ 직원 19명은 권고사직을 당했다. 테마파크는 1년 6개월째 흉물로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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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테마파크㈜가 지난해 2월 1일 홈페이지를 통해 모노레일과 집와이어 운영을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사진은 당시 남원테마파크㈜ 홈페이지 캡처. 중앙포토

법원 “분쟁 없었다면 대출금 회수 가능”

사업비를 대출해 준 대주단이 2022년 12월 남원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면서 양측의 ‘네 탓’ 공방이 시작됐다. 남원시는 ‘주무 관청은 협약 해지 후 1년 안에 대체 시행자를 선정해야 하고, 대체 시행자가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남은 재산 처분 등을 통해 대출 원리금을 대주단에 배상해야 한다’는 남원시와 남원테마파크㈜ 간 실시협약 19조를 남원시에 불리한 독소 조항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남원테마파크㈜ 측이 처음부터 사업 성공엔 관심이 없고, 공사비 등으로 이익을 얻은 후 지자체 자금에 기대 대출금 상환 의무를 해결할 의도로 실시 협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 모두 “관련 협약을 무효라고 볼 만한 사유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피고(남원시)는 테마파크 사업을 제안받기 전부터 춘향테마파크 등을 연계하는 관광단지 개발을 계획하고 있었던 점 ▶피고가 ‘시행사와 금융기관만 이익을 보장받고 지방자치단체는 손실을 보는 사업 구조’라고 주장하며 예로 든 합천군 합천영상테마파크 숙박시설 수익형 민간 투자 사업 사례는 시행사 대표가 PF 대출금 수백억원을 횡령해 사업이 좌초된 경우로 수평적 비교가 어렵다는 점 ▶실시협약 체결 후 피고는 ‘광한루원과 남원 관광지 사이 연계가 활발히 이뤄져 남원시가 체험형 관광지로 변모할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낸 점 ▶이 사업을 통해 남원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증가하면 피고도 각종 수익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누릴 수 있는 지위에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댔다.

이와 함께 항소심 재판부는 “사업 실패의 단초를 제공한 피고가 사업 실패라는 결과만 강조하며 사업 구조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분쟁 없이 정상적으로 개장했다면 대출금 회수도 상당 부분 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원시 관계자는 “판결문을 분석해 상고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라며 “시설물 인수 여부와 활용 방안 등을 포함해 최 시장이 오는 27일 설명회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최영기 전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지자체마다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볼거리·놀거리 등을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이미 거액을 들여 만든 시설을 놀리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 사태로) 남원시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민간 투자 유치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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