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할아버지가 지켰던 나라 한국, 이젠 우리를 지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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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지역 고려인 김클라우디아씨(오른쪽) 가족이 화재로 소실된 주택 터 앞에 앉아 있다. 사진 굿네이버스
“집을 잃고 정말 막막했는데,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이 내밀어준 따뜻한 손길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고려인 3세 김 클라우디아(52)씨의 말이다. 김씨의 조부모는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고려인이다. 다른 고려인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일제 탄압을 피해 연해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나 1937년 소련의 강제이주 명령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쫓겨갔다. 6500여㎞ 떨어진 낯선 땅에 던져진 이들은 빈곤과 차별 속에서 삶을 이어왔다. 김씨의 조부모는 연해주로 돌아가려다 수용소에 끌려갔고, 김씨의 아버지는 고아원을 전전하다 16세부터 집단 농장에서 일했다.
가난은 세대를 넘어 클라우디아 씨와 자녀에게까지 이어졌다. 최근 김씨 가족이 살던 집이 가스 배관 폭발로 무너져 내렸다. 3대 가족이 방 한 칸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사연을 접한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는 김씨 가족을 위해 조립식 주택을 지어줬다. 김씨 가족은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화재로 심하게 훼손된 김클라우디아씨 가족의 주택 내부 모습. 사진 굿네이버스
광복 80년,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고려인 동포 66만여명 중 상당수는 김씨처럼 빈곤의 대물림 속에 고통받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굿네이버스는 고려인에 대한 지원 사업을 지난해 시작했다. 올해 우즈베키스탄ㆍ카자흐스탄ㆍ키르기스스탄ㆍ타지키스탄 거주 고려인 1500여명에 생계ㆍ의료ㆍ교육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들 중에는 독립운동가 후손도 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3세 최 류드밀라(71) 씨는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섰던 최봉설(1897∼1973) 선생의 손녀다. 최 선생은 1920년 군자금 마련을 위해 일제의 침략자금 15만원(현재 가치 150억원)을 탈취한 ‘15만원 사건’의 주역 중 한 명이다. 중국 연길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15만원 사건 이후 러시아로 이주한 뒤 1930년대 강제이주를 당했다.
낯선 땅에 터를 잡아야 했던 최 선생과 후손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손녀 류드밀라 씨도 그랬다. 평생 가난 속에 살아온 그는 지난 2월 뇌경색으로 마비 증상을 앓게 됐다. 그는 “병원 치료를 받기 쉽지 않았고, 거동이 어려워 하루하루가 막막했다”라고 설명했다.

고려인 최류드밀라(71)씨가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모습. 독립운동가 최봉설의 손녀인 최씨는 카자흐스탄에 살던 중 뇌경색 판정을 받아 거동이 어려워졌다. 지난 5월 글로벌 NGO 굿네이버스와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회복했다. 사진 굿네이버스
최씨는 굿네이버스의 도움으로 지난 5월 한국에 들어와 재활치료를 받았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이 3주간의 치료비를 무상 지원했다. 덕분에 혼자 생활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된 최씨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행동은 분명 조국 해방을 바라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다”라고 밝혔다.

최류드밀라(오른쪽)씨가 손자와 함께 굿네이버스 고려인 지원 사업 물품 전달식에 참여한 모습. 사진 굿네이버스
굿네이버스는 중앙아시아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시설을 개선하고, 체육관도 짓는 식이다. 박해성 국제사업본부 지역개발팀장은 “여전히 많은 고려인이 차별을 겪고 있다. 이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선 현지인까지 포괄하는 지역사회 시설 개발, 문화 교류 지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김메디나씨 가족에게 굿네이버스 관계자가 노트북과 태블릿 등 교육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굿네이버스
이제 막 발을 뗀 고려인 지원 사업을 위해 굿네이버스는 ‘광복 80주년, 기억 속에 잊혀진 고려인’ 캠페인을 통해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박 팀장은 “강제이주 고려인이 처음 정착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선 아직도 석탄으로 겨울을 난다. 70가구에 가스 난방을 지원했지만, 아직 750가구 넘게 남아있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의 한국이 존재할 수 있게 희생한 분의 후손을 돕는 데 많은 분이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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