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좀비딸·야당 감독 모두 “영화? 김성수 감독에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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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감독이 제자 필감성 감독(왼쪽)의 ‘좀비딸’ GV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했다. [사진 NEW]
452만 관객(18일 현재)을 모으며 올해 최고 흥행 영화가 된 ‘좀비딸’, 그 전까지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 자리를 지켜온 ‘야당’(337만 관객). 두 영화의 공통점은 뭘까.
‘좀비딸’의 필감성(48) 감독, ‘야당’의 황병국(57) 감독 모두 ‘서울의 봄’ 김성수(64) 감독의 예전 연출부를 거친 제자 출신이다. 특히 정우성·장쯔이 주연의 사극 영화 ‘무사’(2001) 촬영 때 중국 사막의 모래 먼지를 삼키며 고생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무사’ 촬영 현장은 유해진·정석용 등 조단역 배우들이 영화에서 빨리 죽어 한국으로 돌아가길 바랐을 정도로 혹독한 환경이었다. 그 때 김 감독과 동고동락했던 두 제자 감독이 올해 할리우드 외화의 파상 공세 속에서 함께 흥행작을 일궈내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다.
김 감독은 ‘좀비딸’, ‘야당’의 GV(관객과의 대화)에 나서는 등 제자들의 작품을 지원 사격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좀비딸’ GV에 앞서 김 감독과 필 감독을 함께 만났다.
김 감독은 “사춘기 딸, 고양이, 씩씩한 어머니가 영화에 나오는 걸 보고, 필 감독 자신의 삶이 투영돼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환(조정석)의 화법, 냉소적 유머가 필 감독과 비슷하다”고 하자, 필 감독은 “어떻게 아셨냐. 아내도 똑같은 말을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① 연출부에서 일했던 황병국 감독의 ‘야당’②과 필감성 감독의 ‘좀비딸’③. [사진 싸이더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NEW]
‘무사’ 촬영 때 대학생(동국대 영화학과)이던 필 감독은 영어, 중국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연출부에 발탁됐다. 그는 스크립트, 통역 뿐 아니라 편집에서도 재능을 발휘했다. 김 감독은 “원래 편집을 혼자 하는 스타일인데, 당시 필 감독의 재능을 발견해 함께 편집했다”며 “이후 ‘영화계에 천재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며 차승재 영화제작자, 유하 감독이 그와 함께 작업했다”고 말했다.
범죄 스릴러 ‘인질’(2021)로 성공적인 장편 데뷔를 한 필 감독은 “감독님은 ‘무사’ 촬영 때 매 쇼트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파고 들며,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며 “영화에 대한 태도를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김 감독의 첫 천만 영화 ‘서울의 봄’(2023)을 보고 “내가 데뷔한 날보다 더 기뻤다”는 필 감독의 말에 김 감독은 “영화를 보는 눈이 굉장히 깐깐한 필 감독으로부터 장문의 축하 문자를 받고 정말 행복했다”고 답했다. ‘서울의 봄’을 보고 화가 난 관객들이 황정민이 고초를 겪는 영화 ‘인질’ 재개봉에 열광했다는 얘기에 둘은 파안대소했다.

김성수 감독은 또 다른 제자 황병국 감독(왼쪽)의 ‘야당’ GV에도 참석한 바 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김 감독과 황 감독의 인연은 훨씬 더 깊다. 1986년 고(故) 유현목 감독이 만든 영화 모임에 각각 대학원생, 고교생으로 참가했던 둘은 ‘태양은 없다’(1999)부터 감독과 연출부로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황 감독은 ‘무사’에서 연출부 일은 물론, 여솔(정우성)이 던진 창에 이마를 맞고 즉사하는 몽골 병사 역을 맡기도 했다.
전화로 만난 황 감독은 김 감독으로부터 리더의 자세를 배웠다고 했다. “대작 영화를 연출하다 보면 수많은 어려움과 돌발 변수가 생기는데 감독님은 늘 맨 앞에서 독려하면서 끝까지 이끌고 간다”면서 “내가 감독을 해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서울의 봄’에 육군 소장으로 출연했던 황 감독에 대해 김 감독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아이디어와 능력을 잘 끌어내는 연출가”라고 평했다.
황 감독은 ‘특수본’(2011) 이후 오랫동안 메가폰을 잡지 못했지만, ‘베테랑’(2015) 등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김 감독은 “두 감독이 인내심을 갖고 공백기를 버텨냈기에 지금의 영광이 있는 것”이라며 “쫀쫀한 범죄 스릴러(‘야당’), 재미있는 가족 코미디(‘좀비딸’)로 한국 영화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촬영 현장은 혹독하기로 ‘악명’ 높지만, 그를 거쳐간 감독들은 모두 스승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로 스승보다 먼저 천만 감독이 된 추창민 감독(‘태양은 없다’ 연출부), ‘범죄도시’(2017)의 강윤성 감독(‘영어완전정복’ 연출부),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의 김태준 감독(‘감기’ 연출부)도 김성수 사단으로 분류된다. 천만 영화 ‘파묘’(2024)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은 황병국·추창민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김 감독 제자의 제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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