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을 모범적 다문화국가로”...‘한국 박사’ 된 베트남 교수님, 홍보대사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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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충효당에서 만난 도 옥 루이엔 교수가 봉화군이 추진 중인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다문화 국가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봉화에 조성되는 베트남 마을이 그 시작이 될 겁니다.”
지난 18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충효당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도 옥 루이엔(47) 광운대 교수는 충효당 옆 화산이씨 종택 마루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루이엔 교수는 충효당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조선시대 전통 가옥인 충효당이 루이엔 교수가 입고 있는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와 언뜻 부조화를 이루는 듯했지만, 이 일대에 베트남 리 왕조의 집성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가 이곳을 즐겨 찾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아시아의 용’ 한국 궁금했다”
그는 최근 봉화군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인구 약 2만8000명의 소도시 봉화군이 베트남 이주여성을 홍보대사로 임명한 이유는 뭘까. 또 루이엔 교수가 이곳에 조성하겠다고 나선 ‘베트남 마을’은 어떤 곳일까.

지난 18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충효당에서 만난 도 옥 루이엔 교수. 김정석 기자
루이엔 교수와 한국의 인연은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어릴 때 TV에서 한국을 ‘아시아의 용’이라고 표현하는 걸 봤는데, 그때부터 한국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며 “한국은 용이 됐는데, 베트남은 어째서 용이 되지 못했는지도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에야 ‘K-컬처’가 전 세계에 번져 있지만, 90년대만 해도 ‘한류’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런 시기에 루이엔 교수는 생긴 지 2년밖에 안 된 베트남 호찌민대 한국학과에 96학번으로 진학했다. 루이엔 교수는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데 한국학과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들 만류했다. 대학에 들어가 ‘가나다’부터 배웠다”고 했다.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던 루이엔 교수에게 경북 칠곡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유학 권유를 해왔다. 2002년 베트남에서 열린 유학박람회에서 알게 된 대학이었다. 루이엔 교수는 “한국학과 졸업 후에도 ‘한국이 아시아의 용이 된 이유’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해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경북 봉화군청에서 열린 봉화군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박현국 봉화군수가 베트남 출신 도 옥 루이엔 교수(오른쪽)에게 위촉패를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봉화군
서울대·연세대서 학위 취득해
곧장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제대로 공부하려면 서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듬해인 2003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석사과정에 합격했고 2010년에는 연세대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을 시작, 2015년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과정 중 공부와 병행한 봉사활동은 루이엔 교수에게 ‘베트남 공동체’를 생각하게 한 계기였다. 그는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것은 한국으로 이주한 베트남인들의 곤궁함이었다. 내가 타국 생활을 하며 겪은 어려움을 이들이 겪지 않길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베트남 이주민 정착과 자립을 지원하는 부자민(puzamin) 공동체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2014년부터 5년간 모금을 진행해 충남 천안에 베트남 불교 사원인 원오사를 창건했다. 루이엔 교수는 “절을 만든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많은 베트남인이 절을 찾아와 어려움을 호소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베트남인들의 경제 지식을 높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루이엔 교수는 한국 경제 서적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지난 18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충효당에서 만난 도 옥 루이엔 교수가 봉화군이 추진 중인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베트남 공동체 대표로 활동하면서 루이엔 교수는 상상 속 베트남 마을을 떠올렸다. 학교, 마트, 식당, 금융기관 등이 갖춰진 이주민 마을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는 “어느 날 봉화군이 지역에서 ‘K-베트남 밸리 사업’을 하는데 자문을 바란다는 연락이 왔다. 박현국 봉화군수와 충효당이 있는 마을에 찾아가 보니 상상만 하고 있던 공간과 너무 비슷해 감동을 받았다”며 “베트남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리 왕조의 역사에 대해서도 듣고 전율했다”고 했다.
상상 속 베트남 마을 현실서 만나
K-베트남 밸리 사업은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조이자 장기집권 왕조인 리(Ly) 왕조(1009~1225)와의 인연에서 출발한 사업이다. 리 왕조의 후손인 이용상(1174~?)이 역성혁명을 피해 1126년 고려로 피신, 화산 이씨 성씨를 하사받아 봉화 일원에서 집성촌을 이뤘다. 봉화군은 베트남 전통 마을과 리 왕조 유적지 재현 공간, 연수·숙박시설 등을 조성해 충효당을 관광 명소화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 18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충효당에서 만난 도 옥 루이엔 교수. 김정석 기자
루이엔 교수는 봉화군과 힘을 합쳐 베트남 마을 만들기에 집중하는 한편 홍보대사로서 봉화군과 베트남과의 인연도 널리 알릴 예정이다. 지난 11일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이재명 정부 최초로 국빈 방한한 자리에서도 통역을 맡은 루이엔 교수는 참석자들에게 이런 인연을 소개했다고 한다.
루이엔 교수는 “오는 24일 충효당에서 베트남 마을 조성의 시작을 알리는 리 왕조 동상 제막식, 다문화커뮤니티센터 상량식 등이 열린다”며 “이 행사를 지난 노력의 전환점 삼아 한국과 베트남 두 국가의 문화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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