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판'만 깔고 빠지기?…트럼프의 노벨상 속내 노출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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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3년 반을 이어온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중재 외교를 일단 진전시켰다.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일부 포기하는 조건으로 서방 국가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방식의 ‘영토와 안전의 맞교환’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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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및 유럽 지도자들과 회담하는 동안 미소를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가 평화의 가능성에 기뻐하고 있다”며 자신이 어려운 딜을 성사시켰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정작 러·우 양측의 전향적인 양보가 필요한 영토와 안보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 협상의 책임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유럽 국가에게 떠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군 주둔’ 열어놓고…결론은 애매한 “관여”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에서 미군 주둔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방안에 대한 질문을 받자 “우리는 그들을 도울 것이고, 관여할 것”이라며 “결과를 (회담 이후) 오후에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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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의 발언은 해외 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을 번복한 적극적 개입으로 해석됐다. 특히 지난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군 주둔까지 논의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에도 안전보장 문제에 대해 “유럽이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들(우크라이나)을 돕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는 애매한 말을 반복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회담이 끝난 뒤 “지상군 배치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900억 달러 美 무기 구매”

미국의 역할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통해 대략의 윤곽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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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백악관 맞은편 라파예트 공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및 유럽 지도자들과 회담 후 연설하고 있습다.A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안전보장의 일환으로 900억 달러(약 117조원) 규모의 군사 지원 패키지를 받기를 원한다”며 “전투기, 방공 시스템을 포함하는 미국산 무기 구매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돕겠다”고 한 언급의 의미가 무기 판매일 가능성을 시사한 말로 해석된다.

이날 회담에선 러시아가 반대하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대신, 우크라이나가 외부의 공격을 받을 경우 나토 동맹국들의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한다는 내용의 ‘나토 5조’를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그러나 유사시 유럽의 나토 회원국이 어떻게 개입할지는 물론, 역시 나토 회원국인 미국 역시 전쟁에 직접 개입할지 여부 등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만약 미국이 무기만 판매하고 파병 등 실제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에도 한계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휴전 번복에…동맹은 ‘충격’ 러시아는 ‘환영’

트럼프 대통령은 또 막대한 사상자 발생을 막기 위해 협상에 앞서 즉각적 휴전부터 해야 한다던 기존의 입장도 뒤집었다. 관련 질문이 나오자 그는 “내가 중단시킨 6개의 전쟁에서도 휴전은 없었다”며 “평화협정은 매우 달성 가능하고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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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유리 슬리유사르 로스토프주지사 권한대행(오른쪽)과 만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는 휴전 요구에 응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가 전략적 요충지인 돈바스 지역을 포기할 경우 추가 전선 확대를 중단할 뜻을 밝혔던 푸틴 대통령의 입장과 유사하다.

이와 관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미·러·우 3자 회담이 아닌 프랑스가 포함된 4자회담을 요구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역시 “정상회담은 무기가 침묵할 때에만 가능하다”며 협상에 앞선 휴전을 먼저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의 특사인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이날은 일시적 휴전이 아닌 항구적 평화에 초점을 맞춘 중요한 외교의 날”이라며 “메르츠 총리가 휴전을 계속 주장하며 트럼프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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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진행된 다자 회담 도중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젤렌스키→푸틴…책임 전가 '핑퐁 게임'?

그간 영토 포기 불가와 즉각적 휴전을 요구해왔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과 직접 (영토 문제를 논의할)양자 회담을 할 준비가 됐다”며 “(푸틴은) 어떠한 조건도 없이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휴전에 대해서도 “양자 회담의 조건으로 휴전을 요구하면 러시아는 우리가 협상을 방해한다고 비난할 것”이라며 협상의 조건으로 휴전을 내세우지 않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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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다자 회담 도중 미소를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러한 입장 변화는 러·우 정상회담은 물론 휴전 요구까지 강하게 거부해온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 지속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미국이 안전보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이를 조율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중요한 신호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받았다”며 “안전보장의 세부 사항은 10일 내에 문서로 공식화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려는 의도가 내포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푸틴은 나를 위해 협상 원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노출됐다. 그는 이날 다자회담 직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푸틴은 나를 위해 협상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같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생중계 카메라가 촬영 중인 것을 모른 채 녹화된 이른바 ‘핫 마이크’ 사고였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응한 종전 협상이 자신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돕기 위해서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내내 예의와 격식을 갖추며 ‘평화의 전도사’ 이미지를 강조했다. 지난 2월 백악관 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공개 설전을 벌였던 것과는 큰 차이가 났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양자와 다자회담에 이은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영토와 안보의 맞교환 방식의 중재안을 일단 관철시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만남을 주선하는데까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협상을 위한 '판'은 깔았지만, 구체적 협상에 대해선 “궁극적으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이 할 수 있는 결정”이라며 협상 책임에선 한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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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유럽 지도자들과 다자 회담에서 유럽 정상들이 휴전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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