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두산의 '깜짝 스타' 제환유 "작년엔 불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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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투수 제환유(25)는 지난해의 자신이 "불효자였다"고 했다. 이른바 '오재원 수면제 대리처방 사건'에 휘말려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린 탓이다. 그런 그는 올 시즌 어머니를 한 번 더 울렸다. 다만 그 눈물의 의미가 많이 달랐다. 올해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랑스러워서 울었다. 만원 관중 앞에서 씩씩하게 호투한 아들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데뷔 6년 만의 첫 선발 등판에서 눈도장을 받은 두산 투수 제환유. 배영은 기자
제환유는 2020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전체 19순위) 지명을 받고 두산에 입단한 오른손 투수다. 지난 17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에서 데뷔 6시즌 만에 처음 선발 등판 기회를 잡았고, 2만3750명의 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KIA 에이스 제임스 네일과의 맞대결에서 밀리지 않아 역전승의 발판을 놓았다. 조성환 두산 감독대행은 "제환유가 모두의 기대보다 훨씬 더 잘했다. 자신감을 더 가져도 좋을 것 같다"며 "본인이 결과로 보여줬으니, 오는 23일 잠실 KT 위즈전에 다시 선발 투수로 내보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제환유는 "프로선수가 된 뒤로 그날이 가장 행복했다"고 털어놨다. 세종시에 사는 부모와 누나, 동생, 외가 식구가 다함께 잠실을 찾아 그의 첫 선발 등판 경기를 지켜봤다. 그는 "경기 후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는데 엄마가 울고 계셨다. 그 전에 5회 끝나고 마운드를 내려올 때도 그렇고, 경기 도중에도 끊임없이 우셨다고 들었다"며 쑥스러워했다. 지난해 어버이날을 불과 며칠 앞두고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던 아들이 1년 3개월 만에 선발 투수로 잠실 마운드에 우뚝 섰으니, 온 가족의 축제였다. 그는 "어머니가 그땐 크게 내색 안하려고 하셨지만, 많이 걱정하시고 속상하셨을 거다.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어 기뻤다"고 뿌듯해했다.

지난 17일 잠실 KIA전에 선발 등판한 두산 제환유. 사진 두산 베어스
제환유의 지난 5년은 굴곡졌다. 그는 입단 첫 시즌 2군 경기에 나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감이 있는 상태로 등판했는데, 타자들이 내 공을 너무 쉽게 치는 거다. 그 순간 '프로는 확실히 다르구나. 너무 만만하게 봤구나' 싶어 정신 차리고 곧바로 군대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 후 어깨 통증이 찾아와 1년 넘게 재활했고, 그 과정에서 팔꿈치까지 다쳐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전역 후엔 2군에서 기량을 다지며 도약을 다짐하던 참이었는데, 지난해 초 팀 선배였던 오재원의 마약 스캔들이 터졌다. 오재원의 강압에 못 이겨 병원에서 수면 유도제 대리 처방을 받아준 후배 선수 15명 안에 제환유가 포함됐다. 다행히 오재원의 협박 사실이 인정돼 중징계는 피했지만, 법원 판결이 나오고 KBO 상벌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제환유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경기에 못 나가니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의욕도 안 생기고 많이 힘들었다. 처음엔 잠시나마 야구를 내려놓고 싶었을 정도로 멘털이 흔들리고 정신도 반쯤 나가 있었다"며 "그럴 때 2군에서 코치님들이 잘 챙겨주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특히 가득염 코치님은 따뜻한 엄마, 권명철 코치님은 든든한 아빠처럼 다잡아주셨다"고 귀띔했다.

지난 17일 잠실 KIA전에 선발 등판한 두산 제환유. 사진 두산 베어스
그는 원치 않던 휴식기를 전화위복 기회로 삼았다. 두 투수코치와 함께 변화구 제구와 투구 폼을 섬세하게 가다듬었고, 여름부터는 새 무기로 포크볼을 장착했다. 이제는 "그래도 그 1년이 내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당시 2군에 함께 있었던 조인성 두산 배터리 코치는 "환유가 지난해 정말 열심히 했다"며 "도저히 열심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훈련에 집중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진짜 최선을 다하더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증언했다.
제환유는 이름에 모두 제(諸), 빛날 환(煥), 선비 유(儒) 자를 쓴다. 성도 이름도 모두 흔치 않은데, 그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주니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하는 그의 바람은 "훗날 은퇴식을 치르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초 1군에 올라왔을 때, 김재호 선배님 은퇴식을 직접 봤다. 나도 먼 훗날 저렇게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며 "일단 지금은 단 1%라도 팀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게 유일한 목표다. 다음 등판에서는 지난 경기의 부족함을 보완해 더 잘 던지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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