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시바 “반성”에 화답한 이 대통령…“과거사 합의 안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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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일본 방문을 앞두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2023년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합의에 대해 “국가로서의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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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8회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 대통령은 21일 공개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일각에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 기존 합의를 뒤집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고 하지만, 국가라고 하는 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며 “전임 대통령도 국민이 뽑은 국가의 대표이고, 그들이 합의하거나 이미 했던 정책을 내가 뒤집을 순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저 나라는 정권이 바뀌면 (합의를) 뒤집어서 믿을 수 없다’고 하면 국가적 손실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신뢰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불만이 있어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당시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입장 변화에 대해 이 대통령은 “야당 때는 싸울 필요가 있었으나, 지금은 집권 여당 입장에서 책임이 있으니 포용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국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역사 문제라는 것도 분명히 있지만, 경제·사회·문화·환경 등 협력해야 할 부분도 많다”며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발굴하고 협력 분야를 넓혀가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통령실이 따로 공개한 질의응답 자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경제적 문제이기 전에 감정의 문제이므로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중요하다”며 “배상의 문제는 오히려 부수적일 수 있다”고 했다. 한·일 양국이 함께 노력할 문제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기본 정신을 함께 존중하는 동시에, 피해자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한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며 “해원(解寃)이라는 말처럼 원한 같은 것을 푸는 과정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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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캐나다 앨버타주 카나나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밝게 웃으며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15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종전 80주년 전몰자 추도식’에서 ‘반성’을 언급한 데 대한 화답 측면도 있다. 이시바 총리는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지금 다시 깊이 가슴에 새겨야만 한다”며 일본 총리로선 13년 만에 처음으로 ‘반성’을 입에 올렸다. 같은 날 이 대통령은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며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상생 협력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과거사 문제와 경제·안보 분야의 미래 협력을 분리하는 ‘투 트랙(two track) 접근법’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일본에선 박근혜·윤석열 정부 때 이뤄진 한·일 합의가 파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2015년 12월 한·일 외교장관 회담 당시 위안부 합의를 발표하면서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표현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며 2년 만에 합의를 백지화한 전례가 있어서다.

그런 의심을 거두지 않은 상태에서 이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일본 정치권에선 긍정 평가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보수 성향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한 것 역시 일본 내 여론을 고려한 선택이란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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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단과 오찬 간담회에서 임채정 전 국회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양국 정상이 정례적으로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일 경제 협력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획기적인 경제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한·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포함한 태평양 연안국들의 경제협력기구를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도 이제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일본에 이어 미국을 방문하는 이 대통령은 “엄중한 국제 정세 속 한·일,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한·미·일 공조 또한 지속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중 관계에 대해선 “중국은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뗄 수 없는 가까운 존재”라면서도 “대한민국과 중국의 관계는 경쟁·협력·대결과 대립적인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고 했다. 경쟁(competition)·대결(confrontation)·협력(cooperation)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이 미·중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했던 표현이다. 이 때문에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겨냥한 표현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원덕 국민대(일본학) 교수는 “한·일 공조는 대미 외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뒷배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한·일 정상회담을 매끄럽게 끝내고 미국으로 가면 ‘동아시아에서 한·일이 튼튼한 원팀이 돼서 미국의 든든한 우군(友軍)이 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미국에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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