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美 안보 청구서 해법 될까…李 직접 '원자력협정' 개정 제안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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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35년까지 유효한 ‘한·미 원자력협정’의 조기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이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제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원자력 협정 개정은 핵 잠재력 확보와도 맞닿은 민감한 사안이지만 정부는 산업적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협상 카드로 이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1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는 최근 실무선에서 한·미 원자력협정과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다. 아직 기본적인 입장을 교환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으나 정상회담에서 정식 의제로 다뤄질 경우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 협정은 2015년 개정돼 2035년까지 유효하다. 시효가 10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조기 개정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나 한·미 원자력 협정과 관련 "새로운 협상을 할 때가 다가오니 이번 기회에 어떤 것을 우리가 미국 측에 요구해서 한국 원전 산업을 더 활발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핵연료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데 있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동의가 있어야만 20% 미만의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으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금지돼 있다. 핵무기로 전용이 불가능한 재활용 기술(파이로프로세싱)의 연구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동의 없이 20% 미만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만큼, 한국도 최소한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외교가에서 꾸준히 나왔다. 세계적인 원자력 강국으로서 산업적 측면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원전 수출을 원활히 하려면 핵연료 공급 능력이 필요하고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사용후핵연료 저장 공간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처리 기술을 통해 부피를 줄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 문제는 군사적 측면에선 '핵 잠재력' 확보과 직결된 사안이다.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은 핵무기의 원료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 ‘핵 주권’을 갖게 되면 이는 곧 핵무기 제조 능력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와 핵 잠재력 보유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비확산 체제 수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미국이 그간 한국의 숙원인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국 국민 과반이 독자적 핵무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에 농축·재처리 권한을 부여할 경우 비확산 체제의 균열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이와 관련,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자체 핵무장이라든지 잠재적 핵능력을 길러야 한다든지 이런 말은 정말 협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산업 또는 환경적 차원"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유럽 정상들과의 다자 회의에서 발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EPA=연합뉴스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진행 중인 '동맹 현대화' 논의와 맞물려 원자력 협정 개정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비 인상과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 안보 청구서를 연이어 제시하는 상황에서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는 한국이 반대급부로 챙길 수 있는 핵심 사안이자 더 나아가 협상력을 높일 카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 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국제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행보를 보이는 만큼 역대 정부에서 성과가 없었던 문제에서 의외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다만 비확산 사안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역시 강경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면밀한 전략 없이 접근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과제는 '핵연료 주기 자율성' 확보지만 이는 핵확산 방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의 정책 기조와 충돌한다"고 말했다. 이어 "투명성과 다자 협력을 축으로 한 새로운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며 "독자적 농축 시설 구축 대신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기술과 운영을 분담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구가 감시하는 다국적 농축 협력 모델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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