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나를 기억해줘서 정말 고맙네”…89세 참전용사의 첫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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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트웬티 미국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312지부장(왼쪽)은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에게 “나를 기억해줘 고맙다”고 했다. 강태화 특파원

“한·미는 피로 맺어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이다. 우리가 함께한 일을 함께 기억하는 한, 두 나라의 관계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

양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은 노신사는 ‘한·미 동맹의 위기’라는 말에 다부진 표정으로 답했다. 그의 옷엔 한반도와 태극 무늬의 훈장과 배지들이 가득 달려 있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알링턴에서 열린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유해발굴 연례 보고회에서 만난 론 트웬티 한국전 참전용사협회(KWVA) 312지부장은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두 손을 잡고 “나를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말부터 건넸다.

그는 “내가 한국에 갔을 때가 17살이었는데 지금은 89살이 됐다”며 “2007년 120명으로 시작했던 우리 지구의 참전용사가 이제 26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남지 않은 전우들과 ‘마지막이 누가 되든 그 마지막 한 명이 살아있는 한 전우회를 계속 열자’고 다짐했다”며 웃어 보였다.

트웬티는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을 홀대한다는 우려 속에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다는 말에, 보고회장을 가득 채운 500여 명의 유가족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전쟁 세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3~4대 손주들은 지금도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왜 동맹 관계가 됐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어떤 정치적 변화가 오더라도 한·미 관계는 가장 강력하게 유지될 거다.”

실제 보고회장 곳곳에선 빛바랜 사진을 펼쳐놓고 어린 손주들에게 돌아오지 못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족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리처드 딘 한국전 참전용사추모재단(KWVMF) 부이사장도 휴대전화를 꺼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추모의벽에 새겨진 할아버지 이름 사진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이 한국전에 참전했는데, 할아버지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 이름이 새겨져 있는 기념공원 조성을 주도한 인물이다.

딘 부이사장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한국은 세계 10대 강국으로 부상했고,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런 한국의 모습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한국과의 동맹 모델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중동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할, 가장 모범적이고 강력한 동맹의 표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월이 지나고 동맹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고 의심이 커질수록, 이념과 무관한 인도적 유해송환 등을 확대하는 것이 동맹을 보다 강하게 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고회에 참석한 세스 베일리 국무부 동아태국 부차관보 대행은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성명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 성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에 관여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북·미는 전쟁 포로와 실종자 유해 수습 및 송환을 공동성명의 주요 항목으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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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과 대화 중인 켈리 맥키그 DPAA 국장. 강태화 특파원

켈리 맥키그 DPAA 국장은 “트럼프 1기 때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유해 송환을 핵심 사항으로 합의했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호응했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인도적 접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공감대를 넓히고 동맹 관계를 보다 강화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트럼프 2기 들어 가속화된 무역·경제 상황을 우려하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강력한 동맹이 바탕이 된다면 모든 분야가 결국 상호 존중의 기반에서 결론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고회 마지막 세션인 위로 리셉션을 맡은 한국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의 철학은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권오을 장관이 방미 첫 일정으로 중앙일보 보도로 알려진 흑인 참전 부대인 ‘버팔로 솔저’ 정기총회에 참석한 것도 보훈 외교의 발전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권 장관은 이날 대독한 격려사를 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의 명예를 지키고 유가족의 아픔을 덜어드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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