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일렁이는 빛과 물, 바람이 머무는 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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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현대미술 작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Alice Dalton Brown)은 잔잔히 흔들리는 커튼 너머 바다에 반짝이는 물결, 빛이 스며드는 창문 등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풍경을 그려내는 화풍으로 유명합니다. 목가적인 풍경을 섬세한 붓 터치와 탁월한 빛 표현으로 몽환적으로 그려내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어요. 193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댄빌에서 태어난 앨리스는 현재 뉴욕주 허드슨 밸리와 핑거 레이크스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1962년 오벌린대학교에서 순수미술 학사 학위를 받은 후, 1970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했죠. 뉴욕을 비롯한 미국 주요 도시와 유럽 각지에서 30회 이상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21년에는 한국(서울)에서 첫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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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별장에서 바라본 풍경을 담은 작품으로 해질녘 풍경이 하루의 끝자락을 조용히 전하는 듯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버틀러 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된 그의 작품을 한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어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더현대 서울 ALT. 1에서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잠시, 그리고 영원히’는 1961년대부터 최근까지 약 7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시로, 원화 100여 점과 드로잉 및 소품 40여 점을 만날 수 있죠.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빛, 커튼 사이를 흐르는 공기, 수면 위에 반사된 미세한 빛의 떨림 등 작가가 포착한 섬세한 장면들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아름다움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죠. 특히 창 너머로 비치는 빛과 고요한 수면 위에 드리운 그림자,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의 결은 단순한 장면을 넘어 내면의 사유로 이끄는 창이 돼요. 앨리스의 회화는 그저 ‘보는 것’을 넘어, ‘응시하고 머무는 것’의 의미를 일깨우며 감상자에게 고요하고 깊은 몰입의 시간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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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흔들리는 커튼 너머 바다에 반짝이는 물결, 빛이 스며드는 창문 등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풍경을 그려내는 화풍으로 유명하다. 빛에 반사된 푸른 바다와 연결된 창, 안과 밖의 경계는 얇게 비치는 커튼뿐인 2025년 최신작 ‘몽환적인 풍경’.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바다를 품은 작품을 마주하게 됩니다. 빛에 반사된 푸른 바다와 연결된 창, 안과 밖의 경계는 얇게 비치는 커튼뿐이죠. 린넨에 유화로 그린 작품인데, 다가가서 자세히 보아야 화가의 붓 터치가 옅게 보여요.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리얼리스트의 경지를 보여주는 그의 2025년 최신작 ‘몽환적인 풍경’입니다. 앨리스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주제를 바탕으로 상상해 완성한 작품이죠. 86세인 그는 아직도 현역이에요.

“2025년이라는 해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답했죠. “저는 이제 86세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나이에는 더 이상 작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운 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미술 대학 졸업 후 스물한 살에 결혼해 아이 셋 육아에 전념했다고 해요. 육아를 하면서도 틈틈이 작업을 이어간 그녀는 38세가 되자 본격적으로 화가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갤러리 문을 두드렸죠. 하지만 그때마다 “38살이세요? 커리어를 시작할 수 없어요. 너무 늙었어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해요. 그때만 해도 80대까지 활동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을까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그린 ‘몽환적인 풍경’을 보고 있으니 그의 저력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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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달 된 둘째 아이와 함께 주방에 있는 작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미완성인 얼굴을 통해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던 내면을 표현했다.

회고전답게 작가의 초기 시절 작품도 볼 수 있어요. 첫 번째 섹션 ‘시작된 순간(1961~1978)’시기의 작품은 어두운 색조와 강한 명암 대비가 돋보이며, 구조적이고 정적인 화면 구성으로 고전적 사실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창문·벽·계단·문과 같은 건축적 요소가 자주 등장하며, 단순한 풍경을 넘어 공간의 질서와 균형감을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초기 조형 감각을 확인할 수 있죠. 또 앨리스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어요. 부엌을 작업실 삼아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이어가면서 아이들의 장난감 블록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림에만 집중할 시간은 부족했지만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그의 예술 세계에 깊이를 더해 주었습니다. 한창 육아와 예술을 병행하며 그린 작품들은 미완성이거나, 아이들 미술도구인 파스텔로 북북 칠해져 현장성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었죠. 가족을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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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접어들며 색채가 밝고 부드러워지며, 여러 건축물과 풍경을 조합하고 배치하여 이상적인 구도를 찾아냈다.

두 번째 섹션 ‘탐색과 전환(1979~1996)’은 작가가 자신만의 화풍을 본격적으로 구축해 나가던 시기로, 이전까지의 작품이 어두운 색조와 강한 명암 대비가 특징이었다면 1980년대에 접어들며 색채가 밝아지고 부드러워집니다. 따뜻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죠. 또한 빛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는데, 빛과 그림자와 반사를 통해 정적인 공간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기법을 발전시킵니다. 작가는 여러 건축물과 풍경을 조합하고 배치하여 이상적인 구도를 찾아내죠. 사실적이고 정교한 기법 때문에 마치 사진처럼 있는 그대로를 그려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구상 끝에 만들어진 매우 상징적인 장면들입니다.

그는 집의 풍경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요. 집은 개인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 열린 공간이죠. 집의 풍경에 집중하면서 앨리스만의 시그니처가 생기게 됩니다. 바로 집 밖과 안을 매개해주는 도구인 ‘문’과 ‘창문’이죠. 특히 현관은 바깥과 경계에 있는 공간인데, 그 현관 앞에 서서 작가가 펼쳐 보이는 집의 다층적인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화풍은 ‘커튼’으로 완성되게 되는데요. 그는 커튼을 의식에서 숨겨진 베일이라고 표현했죠. “저에게 커튼은 우리의 의식에서 반쯤 숨겨진, 가려진 부분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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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의 섬세한 대비를 통해 정적인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기법이 두드러진다.

전시장 곳곳엔 실제로 하얀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흰색 창문과 작품 속 배경을 표현한 듯한 분홍색 집 등 그의 작품과 잘 어울리게 꾸며졌어요. 작가의 작업실을 묘사한 공간도 놓치지 않고 봐야 할 곳입니다. 물감과 붓, 다양한 색 조합을 시도한 드로잉, 벽에 붙어있는 색상표 등 한 점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차곡차곡 쌓인 시간을 떠올릴 수 있죠.

‘깊어진 시선(1998~2019)’ 섹션은 화풍이 완전히 성숙한 시기로, 빛과 공간을 회화의 중심 언어로 다루는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탄생해요. 실내와 실외를 잇는 창문, 하늘과 바다가 수평선 위에서 만나는 고요한 풍경,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공기와 빛 등 작가의 시선은 점점 더 정제되어 갑니다. 투명한 색감과 여백의 사용이 돋보이며, 정지된 장면 속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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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탈리아 로마의 아메리칸 아카데미에 머무르며 마주한 자연과 건축의 인상이 담긴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 섹션 ‘잠시, 그리고 영원히(2020~Present)’에서는 2020년 이후의 작업을 다루는데, 외부 풍경에서 한층 더 내면적이고 감각적인 세계로 확장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환기를 지나며, 작가는 빛·물·커튼과 같은 요소를 더욱 간결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죠. 흐름·반사·투과 등 비물질적인 현상에 주목하며,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신적 풍경’을 그려낸 이 시기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고요한 감정의 파동을 안겨줍니다.

물 위에 반사되는 빛, 창가의 커튼이 만들어내는 흐름과 결, 실내외를 잇는 부드러운 경계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데요. 물과 빛을 빼놓고 앨리스의 작품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주제이자 상징이죠.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화하는 물과 빛이 가진 그 속성 때문에 때로는 작가조차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그려내기도 합니다. 커튼은 그러한 물과 빛에 신비감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해요.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과 그 위로 부서져 내리는 반짝이는 햇빛, 그리고 하늘거리는 커튼이 어우러진 고요한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차죠. 이 공간에서는 하얀 커튼 위에 작품들을 배치해 절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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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과 붓, 색 조합을 시도한 드로잉 등 작가의 작업실을 묘사한 공간도 꼭 봐야 할 곳이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물결은 실제로 울렁이는 듯한 리듬감을 만들어내고 하늘거리는 커튼 또한 바람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죠. 부드럽고 섬세한 붓질, 빛의 표현을 통해 일상의 고요한 순간을 포착하고, 청량한 색채와 안정된 구도는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림을 통해 깊은 생각에 빠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전시라고 할 수 있죠. 그림과 함께 명상에 빠지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잠시, 그리고 영원히’

기간 9월 20일(토)까지
장소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더현대 서울 6층, ALT. 1
관람 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8시(금,토,일 오후 8시 30분까지, 매표 및 입장은 관람 종료 50분 전 마감)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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