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위고비 처방 벌써 40만건…의사는 묻지도 않고 처방전 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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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약국에 붙은 위고비 관련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A씨(35)는 지난 5월 목디스크 때문에 통증이 심해 재활의학과 의원을 찾았다. 그런데 접수 카운터에 크게 써진 비만치료제 '위고비' 홍보 문구가 눈에 띄었다. 다이어트에 관심 있던 그는 진료 중 "나도 맞아도 되냐"고 물었다. 의사는 별말 없이 처방전을 써줬다고 한다.
키 164㎝, 몸무게 56㎏인 여성 A씨는 체질량지수(BMI·몸무게(㎏)/신장(m)의 제곱) 21 안팎인 정상 체중이다. 하지만 그는 "부작용 안내를 따로 받지 않았고, 비만 환자에 써야 하는 약인지도 몰랐다"면서 "다 그렇게 맞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결국 한 달 정도 사용하다 메스꺼움 증상이 너무 심해 사용을 그만뒀다.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위고비 처방이 국내 출시 8개월여 만에 40만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적절한 비만 치료를 넘어 과잉 처방되고 오남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비만약을 허가된 용법에 따라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재민 기자
25일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올해 6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한 위고비 처방전 수는 39만5384건이다. 월별로 보면 국내 출시된 지난해 10월 처방이 1만1368건이었지만, 지난 5월엔 8배에 가까운 8만8895건으로 급증했다.
식욕을 억제하는 GLP-1 계열 주사제인 위고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전문의약품이다. 하지만 의약품 정보·환자 투약 이력 등을 확인하는 DUR을 통한 처방전 수로 그 사용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김 의원은 "최근 비만치료제 열풍에 실제론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처방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위고비 처방 증가는 주사형 비만치료제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준다. 하나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의약품조사기관 아이큐비아는 올해 1분기 국내 비만약 시장 규모가 108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2.3%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엔 또 다른 비만치료제인 '마운자로'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날 '마운자로 품절' 안내문을 써 붙인 서울의 한 의원에선 "약국 물량이 없어 9월 초까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사형 비만 치료제 중 하나인 '마운자로'. 사진 일라이릴리
다만 비만 치료에 대한 관심이 늘수록 오남용 우려도 함께 커진다. 위고비는 BMI 30 이상인 비만 환자나 BMI 27~30이면서 고혈압 등의 동반 질환이 있는 과체중 환자에게 처방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돕는 미용 목적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마른 사람이 살 빼려고 처방받거나 환자가 임의로 용량을 조절하는 경우도 많다.
이날 오후 '위고비 성지'로 알려진 서울 시내 한 의원엔 보통 체형 여성 3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위고비 처방을 받으려 대기 중이었다. 한 여성은 "고용량 처방이 되냐"고 접수 데스크에 먼저 물었다. 온라인 등엔 고용량 약을 처방받은 뒤 여러 명이 나눠 맞는 사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위고비는 지금껏 나온 비만 치료제 중 가장 안전한 편이지만, 과도하게 유행하는 건 문제"라면서 "정해진 용량을 지키지 않고 막 쓰는 건 건강에 위험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약국에서 판매하는 비만치료제 위고비와 삭센다 제품.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위고비 등 비만치료제의 올바른 사용을 당부한다. 처방 대상인 비만 환자가 써도 구토·설사 등의 이상 반응이 적지 않고, 심하면 급성 췌장염·담석증 같은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어서다. 마른 사람이 사용하면 근육 손실 등의 우려도 크다.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10~30%는 메스꺼움·구토 등 위장관 장애, 1~2%는 담낭 관련 질환을 겪을 수 있다. 비만 등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부작용을 감내하면서까지 약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사 처방·약사 복약지도 없이 해외 직구나 개인 간 온라인 판매를 통해 구매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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