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립스틱 효과' 대신 '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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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완구업체 팝마트가 내놓은 인형 ‘라부부’가 전세계 Z세대(1990년대~2010년대 출생)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토끼와 괴물을 섞어놓은 듯한 괴상한 모습의 인형이다. 국내서도 정품은 2만~5만원, 특별판이나 콜라보 제품은 수십만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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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마트 스타필드 고양점에 진열되어 있는 라부부. 중앙포토

25일 국내 유통업계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라부부는 홍콩 출신의 아티스트 카싱 렁이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요정 캐릭터다. 미국의 가수 리한나, 블랙핑크 리사 등 유명 연예인들이 라부부를 소장하면서 열풍에 불을 당겼다. 최근에는 ‘리셀’(중고 거래) 가격이 폭등하면서 투자 목적의 구매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베이징 경매장에서는 사람 크기의 한정판 라부부가 120만 위안(약 2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라부부의 인기 배경으로는, 우선 '놀이’처럼 구매하는 방식이 Z세대를 자극했다. 라부부는 ‘블라인드’ 박스로 판매된다. 제품을 열어보기 전까지 어떤 인형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FT는 “이러한 방식은 각 시리즈의 장난감을 모두 구매하고자 하는 열성적인 수집가들의 재구매율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최근 경기 둔화와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려는 젊은 소비자들이 이 캐릭터를 찾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팝마트의 ‘크라이 베이비’ 시리즈도 완판됐는데, "울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못생겼지만 솔직한 표정의 캐릭터들의 감정 표현이 Z세대의 감성소비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Z세대는 예쁘고 완벽한 조건보다 정제되지 않은 B급 감성의 소비를 선호한다”며 “불안한 그들과 심정적으로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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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들이 애장하고 있는 라부부. 한국콘텐츠진흥원

팝마트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39억 위안(2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순이익은 46억 위안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이날 홍콩증권거래소에서 팝마트 주가는 종가 기준 326홍콩달러로, 최근 1년 새 600% 넘게 급등했다. 전세계 완구업체 중 시가총액 1위인데, 창업자 왕닝은 중국에서 10위권대 부호로 올라섰다.

‘이상 소비’처럼 보이는 ‘라부부 신드롬’의 배경에 대해 뉴욕포스트는 경제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른바 ‘립스틱 지수’의 최신 버전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불황기에 비싼 명품 대신, 립스틱처럼 저렴하지만 심리적 만족을 주는 상품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랭 미국 새크라멘토주립대 경제학과장은 "불황기의 대체 소비를 보여준다"라고 짚었다.

Z세대의 정서적 불안감의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임상심리학자 트레이시 킹은 영국 데일리메일에 “단순한 취미를 넘어 번아웃이나 사회적 단절에 대한 심리적 반응일 수 있다”며 “수집품은 소유와 통제를 가능하게 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연구소 강미정 연구위원도 "높은 실업률 등으로 다른 세대에 비해 불안과 우울감의 정도가 높은 중국 청년층과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글로벌 Z세대에게 작은 사치 소비 문화가 심리적 만족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라부부 열풍이 계속될 것이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중국의 컨설팅회사 차이나스키니의 마크 태너 상무는 “라부부가 빠르게 사라지는 유행에 그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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