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중국 “균형외교·병행발전” 한·미회담 전날 ‘견제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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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전 국회의장(왼쪽)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특사단이 한·중 수교 33주년인 지난 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왕이 당 중앙정치국원 겸 외교부장과 면담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가 25일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잘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중국 외교부는 방중 특사단을 맞이한 뒤 한국을 향해 “강대국 관계의 병행 발전”을 처음으로 꺼내들었다. 이재명 정부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외교부 본부와 공관, 관영 매체까지 동원해 한·미 동맹을 견제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선 모양새다.

다이 대사는 이날 오전 한·중 우호협회가 ‘한·중 관계 발전 전망’을 주제로 개최한 간담회에서 “한국이 대중 및 대미 관계를 ‘병행 발전’시키는 것이 한국의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친미는 곧 반중이고, 친중은 곧 반미라는 사고를 조장하는 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크게 압축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균형외교를 직접 언급한 것은 사실상 미·중 사이 등거리 외교를 주문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이 대사는 “미국은 일방적으로 중국의 발전을 무리하게 탄압·억제한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이 대사는 또 “한국 각계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이에 중국은 (시 주석의 방한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PEC 정상회의까지 두 달밖에 안 남았으니 양측은 이를 위해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풍성한 성과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맥락상 한국이 미·중 간 균형을 잡는 게 시 주석의 방한 조건이라는 것처럼 들릴 여지도 있는 발언이다.

그가 언급한 미·중 관계의 ‘병행 발전’은 이보다 앞서 이날 오전 중국 외교부의 보도자료에서 처음 등장했다. 중국 외교부는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이재명 대통령 특사단이 전날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면담·만찬을 했다면서 “특사단은 한국이 ‘중국 등 주요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병행 발전하고 지역의 평화, 안정, 발전, 번영을 함께 수호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중국이 강대국 관계의 ‘병행 발전’이라는 말을 쓴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앞서 미국을 겨냥해 “한·중 관계는 ‘제3자’의 제약을 받아선 안 된다”(지난달 28일 한·중 외교장관 통화 관련 중국 외교부 자료)고 말한 것보다 한층 더 노골적으로 균형 외교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만 문제에 대한 ‘사전 압박’도 있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왕 부장은 “민감한 문제를 적절히 처리해 중·한 관계가 올바른 궤도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감한 문제’ 언급은 대만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취지로 읽힌다.

이날 이른 오전 중국 관영 환구시보도 사설을 통해 “전략적으로 자주적인 한국만이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치우치지 않는 한국의 독자적 외교 노선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 등이 다뤄질 경우 중국은 이를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란 메시지”라며 “강대국 관계 병행 발전이라는 표현도 미·중을 동등하게 고려하라는 압박의 성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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