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설로 역사 속 틈새 메우는 일,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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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소설을 쓰던 작가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 『슬픔의 틈새』 작품들을 발표하며 역사소설로 발을 디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세 개의 바다를 건넜다. 그렇게 도착한 섬의 이름은 ‘사할린’.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해방 2년 전, 1943년의 일이다. 섬에 도착한 열세살 조선인 소녀 단옥은 이로부터 53년 후 고향 땅을 밟게 된다.

지난 15일 출간된 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슬픔의 틈새』(사계절)는 역사의 틈에서 삶을 일궈낸, 사할린 이민 1세대 단옥의 이야기다. 사할린은 일본 홋카이도 북쪽에 위치한 러시아의 섬으로, 강제동원 된 가족을 찾아 이주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 1905년 러일전쟁 후 탈환과 재탈환을 반복하며 일본인과 소련인이 섞여 살았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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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의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 『슬픔의 틈새』 표지(왼쪽부터). [사진 사계절·창비]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2016), 『알로하, 나의 엄마들』(2020)에 이어 『슬픔의 틈새』로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 디아스포라(diaspora) 3부작’의 막을 내린 이금이(63) 작가를 지난 20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1984년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이 새벗문학상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금이 작가는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2004) 등 대표작을 꾸준히 내며 아동청소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왔다.

그러다 1920년대생 한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거기, 내가…』를 시작으로 역사소설에 발을 들였다. “오래 마음에 둔 이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아동청소년 문학도 이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죠.” 그 후 1900년대생 여성을 다룬 『알로하…』를 쓰다가 아예 ‘일제강점기 여성 3부작’을 기획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2018년, 작가가 사할린을 방문하며 구체화됐다. 동료들과 함께 한 여행길에서 시네고르스크 탄광 마을을 방문해 징용 1세대 한인의 증언을 듣고, 역사적 흔적을 살폈다. 그해 겨울엔 사할린 이민 1세대 노인들과 다시 만나 그들 삶의 굴곡을 나눴다.

“광복 전후로 사할린 한인의 역사와 한국에 살았던 한인의 역사는 다르게 흘렀습니다. 책에서 이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들의 운명은 1945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달라진다. 해방의 기쁨을 누렸을 한국의 사람들과 달리 사할린의 한인들은 귀향선이 오지 않음을 알고 절망한다. 작가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소설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하고, 각 장의 소제목에 연도를 기재해 달랐던 역사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작가가 묘사한 사할린 한인들의 삶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사할린 한인이 삶 속에서 찾았을 기쁨, 슬픔, 고통을 일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작품의 제목과도 닿아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은 이렇듯 늘 슬픔과 고통의 틈새를 비집고 모습을 드러냈다.”(『슬픔의 틈새』 일부) 인물들은 자식 교육을 걱정하거나, 가족을 잃거나 얻는 등 현대의 우리가 공감할 법한 일을 겪으며 살아간다.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의 틈새를 메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로서 그 과정을 즐겼는데, 독자들도 그 틈에서 재미를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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