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덴마크인이 아동성범죄”…그린란드서 여론조작한 간첩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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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그린란드 누크에서 시위대가 "우리는 판매 대상이 아니다"라고 쓰인 슬로건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올 초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 수상한 외국인 남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그린란드의 정치인, 사업가, 일반 시민들을 들쑤시고 다니며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했다.

이 기간 소셜미디어(SNS)에선 그린란드의 아픈 기억이 들춰졌다. 1960년대 덴마크가 ‘사회 실험’이라며 그린란드의 어린이들을 납치 및 성폭행했던 사건이 다시 언급된 것이다. 당시 덴마크는 4~9세의 그린란드 원주민인 이누이트족 어린이 수십명을 덴마크인으로 만들겠다며 납치했다. 비슷한 시기 산아 제한을 명분으로 이누이트족 여성들을 강제로 피임시켰던 사실도 논란이 됐다.

누크를 다녀간 의문의 남성들, 이들의 배후엔 누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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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그린란드의 미군 피투픽 우주기지를 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덴마크 공영방송 DR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관련된 미국인들이 그린란드에서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미국인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우호적인 주민, 반대하는 주민의 명단을 작성했다. 주민들을 통해 미국 언론에서 덴마크가 부정적으로 비춰질 사례를 수집하기도 했다.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이라는 일종의 여론 조작이다.

DR에 따르면 명단 작성을 주도한 미국인은 공개 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수차례 함께했던 인물이다. DR은 이름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그가 “최근 미국 안보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할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DR은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 일한 적이 있는 다른 미국인 두 명도 그린란드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정보 당국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전했다.

덴마크 정부는 미국 대사 대리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미국이 보도 내용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며 “어떠한 내정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덴마크 보안정보국(PET)은 “그린란드는 여전히 (미국의) 다양한 영향력 캠페인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이는 그린란드와 덴마크 간 불화를 조성하려는 목적에서다”라고 밝혔다.

그린란드, 고래 싸움에 등 터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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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덴마크 마리엔보르그에서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오른쪽)와 옌스 프레데리크 니엘센 그린란드 총리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동안 물과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이 풍부한 그린란드를 향한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에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며 덴마크와 충돌했는데, 재선에 성공한 후에는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린란드를 겨냥한 공작의 배후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것일까. 의심스러운 활동을 벌인 미국인들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려진 바는 없다. 미국 정부는 이번 사건에 “개인의 행동”이라며 선을 그었다. 덴마크 주재 미국 대사관은 “미국인 개인은 그린란드에 대해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 미국 정부는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지시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지난 5월 미 정보당국에 그린란드와 덴마크 내에서 미국의 편입 목표를 지지하는 인물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정작 당사자인 그린란드는 발끈한 덴마크와 달리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린란드 자치정부의 비비안 모츠펠트 외무장관은 그린란드 언론 세르미치아크에 “미국이 그린란드에 영향을 주려는 수상한 활동에 대해 보고받은 바가 없다”며 “그런 증거는 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린란드는 300년 가까이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덴마크 일부로 편입됐고, 2008년 자치권을 되찾았다. 지난 3월 총선에서 승리한 자유주의 정당 데모크라티트는 친미 성향이다. 덴마크에서 독립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린란드는 여전히 경제적 자립성이 취약해 덴마크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수십년 넘게 자신들의 범행을 외면하던 덴마크 정부는 부랴부랴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이날 프레데릭센 총리는 옌스 프레데리크 니엘센 그린란드 총리와 공동 성명을 내고 과거 그린란드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강제피임 조치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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