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특수학교 대신 ‘좋은 학교’ 와야”…또 한번 좌절한 장애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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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회원 등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의회 앞에서 성진학교 설립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을 살려달라" 말하며 무릎을 꿇었다. 전율 기자
발달 장애인 편경수(25)씨는 2013년부터 8년간 매일 왕복 3시간 버스로 통학해야 했다. 편씨가 사는 서울 중랑구에는 특수학교가 없어 광진구 특수학교까지 오전 7시 30분 통학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편씨의 어머니 유인숙(59)씨는 “아침 6시부터 아이를 깨워 학교를 보냈다”며 “학교가 없어서 그렇게 갈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중랑구도 2017년 특수학교 ‘동진학교’가 개교할 예정이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부지를 8차례 옮긴 끝에 올해 겨우 공사를 시작했다. 개교가 미뤄진 10년 6개월간 편씨는 학교를 졸업했다.
서울 성동구에 설립 예정인 지체 장애 학생을 위한 성진학교(가칭)도 비슷한 처지다. 성진학교 설립은 교육부와 국토부, 서울시교육청 등의 심사 및 심의를 전부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다음 달 9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와 같은 달 12일 최종 의결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일부 지역 주민들과 지자체 의원이 반대에 나서면서 학교 설립이 보류될 위기에 봉착했다.
서울에서 지체 장애 학생을 위한 공립 특수학교는 전체 25개 자치구 중 7곳뿐이다. 동북권에는 노원구 정민학교가 유일해 성동구·동대문구·광진구·중랑구·성북구·강북구 지체 장애 학생과 학부모는 장거리 통학이 불가피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23년 성수공고가 폐교한 부지에 서울 동북권 지체 장애학생을 위한 총 22학급 규모 특수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2029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설립을 추진 중이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등이 성진학교 설립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회의 즉각적 심의 통과와 반대파 의원들의 특수학교 설립 방해 기도 중단을 촉구했다. 뉴스1
그러자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한 주민 반대가 시작됐다. 지난 6월 21일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성진학교 설립 주민설명회에서 일부 주민들은 “일반고를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시의회 교육위 부위원장인 황철규 의원은 설명회에서 “장애인 학생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고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성진학교는 가까운 덕수고등학교 부지로 옮기고, 성수공고 자리에는 우리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좋은 학교’를 유치해달라고 교육청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 학부모 단체는 “예정 부지에서 밀려나서 제대로 특수학교 설립이 진행된 곳이 없다”고 반발했다. 한번 밀려나면 같은 이유로 또 부지를 옮길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12년 동안 부지를 8차례 옮겨야 했던 동진학교가 그 선례다. 이들은 “지역 내 특수학교에 가기를 갈망하고 기다렸던 장애 학생들은 원거리 통학을 하다 졸업하고 만다”고 외친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7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인근에서 열린 '특수학교 설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학부모들의 항의를 들은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와 전국 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 등 장애학생 학부모 150여명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시의회 앞에서 ‘성진학교 설립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설립 승인을 촉구했다. 중증 장애 자녀와 함께 성동구에 거주 중이라는 권숙씨는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없어 성동구에서 12년 동안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다녔다”며 “스스로 한 발 내딛지도 못하는 아이를 새벽부터 깨워서 준비시키고 하루 왕복 세네 시간씩 차에 태워 보내야 하는 심정을 여러분은 모를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에겐 교육권이 아니라 생존권”이라며 “학교를 지어 우리 아이들과 저희를 좀 살려달라”며 무릎을 꿇었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은 회견장에 찾아와 “성진학교 설립에 차질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오후 3시 30분부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등 관련 단체들은 서울시의회 최호정 의장과 면담을 진행했으나, 성진학교 설립에 대한 확답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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