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다시 한미일 vs 북중러…한국 '新냉전' 한복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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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앙포토
다음 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이른바 중국의 전승절(戰勝節·항일전쟁 및 반 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행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 및 방미로 3국 정상 간 연쇄 회담이 이뤄진 직후 북·중·러 정상이 뭉치는 건 냉전 시대 때 남방 삼각관계(한·미·일)와 북방 삼각관계(북·중·소련) 간 대결 구도의 재연으로, 한국은 그 한복판에 서게 됐다.
북·러 야합 ‘거리 두기’ 끝낸 中
북·중 양국은 28일 김정은의 전승절 행사 참석을 동시에 발표했다. 승전 80주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9·3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26명의 국가 정상을 발표하며 푸틴 다음으로 김정은의 이름을 불렀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를 계기로 양자회담은 물론 북·중·러 3국 정상회의가 열릴 가능성도 상당하다.
시 주석이 심혈을 기울인 행사에서 김정은, 푸틴과 나란히 서 세를 과시하는 건 중국이 북·러 간 '불량 동맹'과의 거리 두기를 끝내고 3국 연대의 구심점으로 다시 부상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미국과 관세 전쟁을 비롯해 사실상 전 분야에서 대립 중인 중국으로서는 결국 전통적인 '반미 우방'과 세를 규합하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둘러싸고 트럼프와 줄다리기를 하는 푸틴 입장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김정은도 종전 이후 푸틴에게 ‘효용 가치’가 낮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다시 중국과 밀착을 모색할 동기가 충분하다. 올 연말을 시한으로 정한 경제·군사 발전 5개년 계획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김정은에게 필수다.
결국 북·중·러의 전략적 이해가 교차한 지점이 바로 9·3 전승절이었다는 분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중 포위망이 좁혀지는 상황에서 세를 규합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은 중국, 중·러 정상 옆에 서서 정치적 선전을 하고 싶은 북한, 러·우 전쟁으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 유지가 필요한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안정적 한·미·일 협력 발전 의지를 밝힌 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3국 협력의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가 견고해지자 한국을 견인하려 하는 것보다는 북·중·러 간 연대로 대결 구도를 가져가면서 한국을 압박하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전 외교 채널 등을 통해 김정은의 전승절 참석 사실을 이미 인지했다고 한다. "(한·미 정상회담 논의에서)잘된 것들이 이쪽이 움직이는 흐름 연장선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는 평가다.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때 취소 언급까지 나올 정도로 통상 등에서 이견이 심했는데, 북·중·러 정상이 전승절에 모인다는 사실을 파악한 한·미가 동맹의 공고함을 보여주기 위해 성공적으로 회담을 마무리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
이 대통령이 방미 중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의 '종언'을 고하는 등 선명한 대중 메시지를 낸 것 역시 같은 맥락일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 뒤 서명한 조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다자무대 데뷔…과감해진 김정은
김정은 입장에서 이번 전승절 참석은 국제 다자무대 데뷔전이 된다. 기존에 중국과 러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을 찾은 적이 있지만 모두 단독 방문이었다. 김정은이 '최고지도자는 다자 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전승절에 참석하기로 한 건 '뒷배' 러시아의 비호를 등에 업고 외교적 자신감을 키웠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승절에는 북한과 러시아 외에도 캄보디아, 베트남 등 모두 26개국 정상이 전승절에 참석한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들로부터 한꺼번에 '핵보유국 북한'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또 중국이 이에 화답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행사에서 고위급 인사를 보낸다면 김정은은 대내외적 건재를 과시할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관영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담화로 내놓는 수준의 외교전을 펼쳤던 김정은이 직접 '메인 플레이어'로 등판해 역할을 하겠다는 신호를 발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9일 외무성 주요국장 협의회에서 "우리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역 외교무대"를 언급하며 역내 외교전을 예고하기도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김정은이 첫 다자회의 데뷔를 통해 정상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반서방 진영인 '글로벌 사우스' 안에서 북한의 외교 공간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며 "이는 북한 내부적으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 개별 국가로 분리하려는 시도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李 '피스메이커론' 출발부터 시험대
결과적으로 한·미 정상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각기 '페이스메이커'와 '피스메이커'를 자처하며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으나, 김정은은 이를 거절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선택한 게 됐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의 이번 방중 결정은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더 줄이는 상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APEC 2025 정상회의' 만찬장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모습. 이날 기준 만찬장 공정률은 60%였다. 뉴스1
정부의 대북 유화 구상도 출발부터 시험대에 서게 됐다. 미·중 사이에서 외교적 고민이 깊어진 데다 APEC 정상회의에 미·중 정상 모두의 참석을 유도해야 하는 향후 외교 일정과도 맞물려 셈법은 훨씬 더 복잡해졌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미관계 개선으로 남북관계 발전을 견인하겠다는 구상을 관철하기 위해 김정은의 방중 사실을 알고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지속해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대북 관여 측면에서 본다면 김정은이 고립을 깨고 정상적 외교 무대에 나서는 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연합뉴스TV에 출연해 김정은의 방중과 관련해 “중국을 포함한 여러 관련국과 긴밀히 협력해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며 “그 목표는 궁극적으로 북한 비핵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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