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배임죄 기소, 한국이 일본 31배…민주당도 “법 슬림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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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배임죄로 기소되는 인원이 일본의 30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개정 상법이 시행된 가운데 배임죄 적용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도 배임죄 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일 발표한 ‘기업 혁신 및 투자 촉진을 위한 배임죄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에서 2014년 이후 10년간 배임죄로 기소된 인원을 비교해 보니 일본은 연평균 31명, 한국은 965명으로 나타났다. 일본 인구(1억2000만 명)가 한국의 2배가 넘는데도 배임죄 기소 인원은 한국이 31.1배 더 많았다.

또 한국에서 최근 10년간 배임죄 기소율은 14.8%로, 전체 사건 평균 기소율(39.1%)보다 낮았다. 경총은 “배임죄 고소·고발이 남용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현행 배임죄는 구성 요건이 광범위하고 모호해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하고, 배임 행위 요건(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도 모호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배임죄는 형법·상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등 3곳에 나뉘어 있다. 이 중 상법상 특별배임죄(622조)는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특경법(3조)으로 가중처벌할 수 있는 기본 범죄에 형법상 배임죄(355조·356조)만 포함돼 있어 수사기관이 형법상 배임죄로만 피의자들을 수사·기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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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배임죄의 처벌 수준과 기준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득액이 50억원을 넘으면 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준하게 처벌하는 특경법상 배임죄(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의 가중처벌 기준은 1990년 개정 이후 35년간 그대로다.

잇따른 ‘기업 옥죄기’ 법에 비판이 이어지자 여당도 진화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2일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배임죄 완화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TF 발족식에서 “다수의 선진국은 경제 범죄를 통상적으로 민사 배상이나 과징금 중심으로 다루지만, 우리는 형사 책임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배임죄의 경우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경영 판단마저 검찰의 수사·기소 남용으로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왔다”며 “새로운 시대에 맞게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는 발족식에 앞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적으로 배임죄는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관건은 형법상 배임죄를 어떻게 완화할지 여부다. 기업들은 ‘경영 판단의 원칙’을 상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근거로 주의 의무를 다해 경영상 결정을 내린 경우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원칙을 법에 못박자는 것이다.

다만, 이미 법원이 판례를 통해 경영 판단의 원칙을 정립하고 있지만 재판부에 따라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권칠승(TF단장) 의원은 “배임죄를 슬림화해야 하는 건 틀림없는데, 어떤 모양으로 바꿀지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개정 상법 영향으로 기업 현장이 혼란스러운데, 대규모 투자 등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신속히 내릴 수 있도록 국회가 발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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