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독자에 두번째 손 내민 권누리 시인...“기쁨과 슬픔은 늘 함께 찾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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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책의 끝은 모두 계획되어 있다"며 시인의 말을 여는 권누리 시인은 "유독 이번 시집에서 많이 걸었다"며 "쓰고나니 산책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25일 출간된 권누리(30) 시인의 시집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문학동네)의 제목은 이런 시구 중에 등장한다. “한여름이 정수리에 쏟아진다/투명하게 빛나는 손바닥/오늘부터 영원히 생일을 축하받고 싶다…”( ‘오래된 섬광’ 일부)

권누리의 시는 투명하다. 그래서 빛과 어둠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 시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개념이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모순’을 발견하고, 시로 옮긴다. ‘생일’이란 개념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는 기쁜 날인 것처럼, 누군가에겐 두렵고 외로운 날일 수도 있다. 이 시의 화자 역시 “축하받고 싶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눈부신 환대를 받은 경험은 “너무 오래됐”다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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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누리 시인의 신간 시집『오늘부터 영원히 생일』표지. 사진 문학동네

첫 시집 『한여름 손잡기』(2022, 봄날의책)로 출간 1달만에 2쇄, 총 10쇄를 기록하며 약 1만명의 독자를 만난 권누리 시인이 두 번째 시집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7일 오후, 시인을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시인의 생일은 지난달 18일. “매년 돌아오는 여름이 밉고 싫었어요. 어렵고. 제가 태어난 계절이라서, 저를 많이 투영해서 그런 것 같아요.”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한 그는 “다그치며 썼던 소설과 달리 시를 쓸 때는 놀이하듯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학교 밖에서 열린 김현 시인의 수업에서 배우게 됐다. 자신이 쓴 소설 속 화자들은 갇힌 방 밖으로 나오지 못했는데, 시를 쓸 때는 달랐다. 그렇게 혼자 시와 놀다가 등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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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누리 시인의 첫 시집『한여름 손잡기』표지. 사진 봄날의책

자신이 태어난 계절인 여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첫 시집 『한여름 손잡기』에서 시인은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들여다보았다. 화자의 연인은 ‘언니’라고 불리고, “너희는 세계의 모든 이분법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구나”(‘도로시 커버리지’ 일부)라며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비판한다.

첫 시집을 내고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시를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북토크나 후기를 통해 만난 독자가 “함께 읽고 싶어 이 책을 주변에 선물했다”거나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설명할 때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첫 시집을 낸 후에 김민정 시인에게 연락이 왔어요. 뛸 듯이 기뻤죠. 그 인연으로 두 번째 시집까지 내게 되었는데, 그때 새삼 누군가 나의 시를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두 번째 시집은 저의 좀 더 다른 정체성과 타인에 관심을 가지며 쓴 것 같아요. 고향인 대구를 들여다보거나, 제 청소년기를 다뤘어요.” 이번 시집은 그가 201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후,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쓰인 작품이다. 첫 시집을 쓸 때 적어뒀던 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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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시에선 하나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화자가 많아요. 그게 제가 쓰고싶은 시고, 제가 느끼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재나 개념을 떠나 시인의 시적 세계에서 견고해진 것이 있다면 ‘모순’을 끌어내는 태도다. “세상에 좋은 일이 일어나면 (세상의 다른 면에서) 동시에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걸 저도 늘 한꺼번에 경험해요. 모든 감정이 이어져 있다고 느껴요.” 시인의 세계에서 죽음과 삶, 나와 너, 기쁨과 슬픔은 모두 양면 색종이처럼 붙어있다.

“이 시집에 청소년기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어요. 그 시기를 지나고 있거나 그때의 기억이 중요하게 남은 분들이 그 시간을 잘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인은 두 번째 시집을 읽을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같이 살자. 더 산다고 삶이 많이 바뀌지는 않지만, 살아지긴 하더라고요.”

9월 중 나올 신간은 환경운동연합에서 기획, 8명의 시인이 함께 참여한 ‘기후시집’이다. 시를 쓰기 위해 기후위기의 영향을 받은 최전선 지역 답사도 했다. “제가 더 써보고 싶은 글은 사회를 바라보는 방향이랑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시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시랑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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