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낡은 틀의 법과 제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바꿀 것”이라며 “당장 이달 정기국회 및 내년도 예산 결정 과정에서 정부가 해야 할 세부 사업을 잘 정리해 보완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4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기자 간담회를 했다. 그는 "K-컬처에 대한 절망의 목소리가많이 들린다"라고 전했다. 뉴스1

지난 7월 31일 취임한 최 장관은 이날 취임 후 문화 관련 현장을 둘러보며 확인한 ‘K-컬처’의 현실에 대해 “당혹스럽다”라고 토로했다. 최 장관은 “K-컬처의 현재가 정점이고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회의론을 넘어 절망의 목소리가 현장에서 꽤 많이 들린다”라며 “아주 가까운 미래에 한국 문화계가 어두운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많다”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 영화 산업 붕괴 가능성을 우려했다. 최 장관은 “현장에서 확인한 한국 영화 산업의 현실은 심각함을 넘어 처참한 수준”이라며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올해 국내에서 제작되는 제작비 30억원 이상의 영화가 20편도 안 되는 데 이 정도로는 영화계 직업군들이 상시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최 장관은 국내 영화계의 현실을 거론하며 거장 이창동 감독의 사례를 전했다. 그는 “최근 이창동 감독이 신작을 만들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았는데 나머지 투자금을 구하지 못해 결국 지원금을 반납하고 넷플릭스로 가셨다”라며 “투자를 못 받아서 해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가는 상황을 벗어날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문화기반 시설에 대한 안타까움도 나타냈다. 최 장관은 "각국에서 K-팝 팬들이 찾아오지만 정작 K-팝 공연을 보지 못한다. 공연 인프라가 없어 공연이 상시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본은 4만석 이상 규모의 돔구장이 5개고, 현재 하나를 더 짓고 있는데 한국은 한 개도 없다”라고 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4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문화 재정 비중이 전체 예산의 2%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1.3% 수준이다. 연합뉴스

위기론을 불식시키고 K-컬처의 성장을 이어가기 위한 방안으로 최 장관은 우선 낡은 법 조항에 대한 정비 필요성을 들었다. 그는 “현재 한국의 법에선 OTT에서 상영하는 영상물은 영화가 아니다”라며 “낡은 틀이 아직도 상존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실정에서 법과 제도를 미래지향적으로 빨리 고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 장관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에 대한 전면적 개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화 관련 재정 확대 필요성도 강조했다. 최 장관은 “최근 K-컬처 붐에 따른 한국과의 공동 제작, 해외 제작진의 한국 현지 촬영 등에 대한 요청이 많은데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0원”이라고 지적했다. 또 “기초 문화 장르를 튼튼히 하기 위해 예술인들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여건이 좋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문체부 및 타부서의 문화 관련 예산을 더한 문화 재정 규모는 올해 8조8000억원에서 내년에는 9조6000억원(정부 안 기준)으로 9.2% 늘어난다. 증가율이 낮지 않지만, 전체 정부 지출에서 문화 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 기준 1.32%에 그친다. 최 장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중 중하위권 수준”이라며 “문화재정 비중이 2%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최 장관은 “올가을 국회에서 이뤄질 문화 재정 세부 예산 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꼭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하는 것들을 꼼꼼하게 챙겨 잘 보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