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열심히 대충 살자, 제 인생 모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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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의 출간을 맞아 2일 서울 원서동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노래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 [연합뉴스]

“글을 정말 쓰기 힘들 때 수제비를 떠올린다. 속에 든 것을 잘 감싸지 않아도, 아니, 속에 든 것이 없더라도 내가 가진 반죽을 적당히 얇고 보들보들하게 밀어서 뚝-뚝- 떼어 넣어버리자고.”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이하 브로콜리)의 가사와 노래를 만드는 윤덕원(42)은 자신의 첫 책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세미콜론)에서 이렇게 썼다. 2005년 밴드 결성 이후 ‘브로콜리’만의 특장점인 서정적 가사는 모두 그의 손끝에서 나왔는데도, 쓰는 게 어려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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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졸업하는 친구에게 “이 미친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졸업’)라며 마음 아린 인사를 건네고, 연인에겐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앵콜요청금지’)라며 이별을 노래했다. 이번엔 추천사까지 딱 300쪽을 채운 에세이집으로 돌아왔다. ‘열심히 대충 살자’는 인생 모토를 내세웠다. 윤덕원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씨네21’ 등에 연재한 에세이 39편과 14곡의 노래 가사, 앨범 소개문 13편이 실렸다.

도대체 뭘 열심히 하고, 뭘 대충하라는 걸까. 지난 4일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열심히’와 ‘대충’은 정반대 의미의 부사, 더군다나 윤덕원은 도무지 ‘대충’이라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20년 넘게 꾸준히 곡을 쓰고 앨범을 내는 싱어송라이터인 데다가, 틈틈이 방송과 라디오에 출연했으며, 서울대 졸업 후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학 생활체육지도과에 재학 중인 만학도이기도 하다. 그는 “대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입을 뗐다. “돌이켜보면 ‘브로콜리’의 첫 시작부터가 그렇게 ‘해내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 같아요. 책임을 다하고 마감 시간을 지키려면, 어떤 건 적당히 타협하거나 짐을 나눠서 질 필요도 있다는 걸 깨닫고, ‘열심히 대충’이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열심히 할 것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덜 중요한 건 수제비처럼 빠르게 툭툭 쳐낸다는 의미다.

그가 터득한 열심히, 그러나 대충 사는 방법은 책에서 공개한 작사 노하우로도 유추할 수 있다. 그는 가사 내용뿐 아니라 가사를 잘 쓸 수 있는 ‘공식’ 만들기에도 골몰한다. 방법론만 잘 만들어 두면, 다음 가사를 쓸 때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문장을 반대로 뒤집어본다.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잊지 말아야 할 일은 잊지 말자” 같은 식이다.

책을 발간하면서 같은 제목의 노래도 발표했다. 어쿠스틱 기타로 느리게 연주되는 스윙 리듬의 리프와 윤덕원의 나른한 목소리가, 조금은 내려놓고 살자는 책의 메시지와도 어울린다.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뜻에서 출판사 직원들의 합창도 넣었다. 노래는 “붙들고 있던 게 사라질까 봐 다듬고 다듬어도 모자랐다”는 고백으로 시작해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이란 가사를 여덟 번이나 반복하며 끝난다. “그나마 ‘대충’ 하기 위해 코러스 부분에서 음정이 틀린 곳도 따로 보정하지 않았다”는 그의 ‘헐렁한 치밀함’을 떠올리며 들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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