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서명 추정 ‘외설 편지’ 공개됐다…엡스타인 의혹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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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하원 감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모임은 8일(현지시간)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의 2003년 생일 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를 X에 공개했다. 미 하원 감독위 민주당 의원 모임 X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 과거 아동 성착취범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외설적 그림이 담긴 편지가 8일(현지시간) 공개되면서다. 트럼프가 당초 편지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던 탓에 잠잠했던 트럼프의 엡스타인 성범죄 연루 의혹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미 연방 하원 감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모임은 이날 엡스타인의 2003년 ‘생일책(생일 축하 편지 등을 묶어 펴낸 앨범)’에 실린 트럼프의 편지를 X(옛 트위터)에 공개했다. 편지에는 굵은 펜으로 그려진 여성의 나체 윤곽선과 함께 여러 줄의 타이핑된 글로 ‘도널드’와 ‘제프리’가 대화하는 문장이 적혀 있다.
마지막은 “생일 축하해, 그리고 하루하루가 또 다른 멋진 비밀이 되길”이라는 글로 끝난다. 하단 송신인란엔 ‘도널드 J 트럼프’가 적혀 있으며, 여성 윤곽선 허리 아랫 부분에는 트럼프의 필체와 흡사한 ‘도널드(Donald)’ 서명이 적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당 편지는 타자로 작성된 문서에 그림과 서명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며 “서명은 여성의 음모를 흉내 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미국 워싱턴 미 상공회의소 건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이 함께 찍은 과거 사진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 : 모든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빔 프로젝트 메시지가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가 이 편지를 쓴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트럼프의 기존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WSJ은 지난 7월 “2003년 엡스타인의 친구들이 그의 50번째 생일 축하책을 만들기 위해 외설적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중 한 명이 트럼프”라며 “벌거벗은 여성의 윤곽선 그림 속에 타자기로 친 문장이 쓰여 있었고, ‘생일 축하한다’는 문구와 함께 ‘도널드’라는 서명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법무부가 엡스타인의 성착취 범죄를 도운 전 여자 친구 길레인 맥스웰이 만든 이 생일책을 확보 중이라는 것이다.
보도 직후 트럼프는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가짜 기사”라고 반박하며 WSJ 기자와 WSJ의 모기업 뉴스코퍼레이션, 소유주 루퍼트 머독 등을 상대로 100억달러(약 14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원 감독위 민주당 간사인 로버트 가르시아 의원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며 “대통령은 진실을 말하고 엡스타인 관련 파일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줄곧 말해왔듯 트럼프 대통령이 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서명하지도 않은 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테일러 부도위치 백악관 부비서실장도 X에 지난 몇 년 동안 트럼프의 서명 사진을 공유하며 “그것(이날 공개된 편지 서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자신이 서명한 행정명령 서류를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WSJ는 편지가 트럼프가 쓴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편지엔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대화를 3인칭으로 표현한 대목이 많은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이나 SNS에서 자주 쓰는 화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멋진 일’ 같은 표현도 트럼프의 연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휘다.
뉴욕타임스(NYT)도 “‘지진계 그래프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 트럼프의 물결 모양 서명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해왔다”며 “부도위치가 올린 트럼프 서명과 달리 생일 축하 편지엔 트럼프의 이름(도널드)만 적혀 있다. 트럼프는 보통 사적인 메모에 이런 서명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편지는 트럼프의 성접대 의혹도 재점화시키고 있다.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2019년 구속됐다가 구치소에서 숨졌다. 2000년대 초까지 엡스타인과 가깝게 지낸 트럼프는 2002년 뉴욕매거진 인터뷰에서 “그(엡스타인)는 함께 있으면 무척 재미있다. 예쁜 여자들을 나만큼이나 좋아한다. 많은 수는 어린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 소속 민주당 하원 의원들이 8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공개한 제프리 엡스타인 생일 책자의 다른 한 페이지엔 엡스타인이 ″완전히 가치가 떨어진 여성을 트럼프에게 2만2500달러에 판다″는 내용을 농담처럼 적은 글과 사진이 담겼다. 미 민주당 감독위원회 의원 모임 X 캡처
트럼프는 이후 엡스타인과 사이가 멀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워싱턴 정계에선 엡스타인이 정·관계 유력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성접대 명단이 존재하며, 명단에 트럼프도 있을 거란 의혹이 제기돼 왔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생일책의 다른 페이지에서 엡스타인이 “완전히 가치가 떨어진 여성을 트럼프에게 2만2500달러(약 3100만원)에 판다”는 내용을 농담처럼 적은 글과 사진을 X에 공개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면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 7월 법무부는 엡스타인의 ‘성접대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엡스타인의 타살설과 민주당 인사들의 성접대 의혹 공개를 기대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거센 반발을 샀다.
다만 이번 편지가 트럼프가 엡스타인의 성착취 범죄에 연루됐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법무부 발표에 분노하던 마가 세력도 WSJ의 외설 편지 보도 이후 트럼프 지지로 결집했다”며 “이번에 공개된 편지도 조작된 거라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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