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프랑스, 9개월만에 내각 또 붕괴…외신 “위기 닥쳐야 국민들 정신차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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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8일(현지시간) 파리 의회에서 정부의 긴축 예산에 대한 신임 투표를 앞둔 임시 의회에서 일반 정책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재정 위기에 허덕이는 프랑스가 개혁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정치 위기 수렁에 빠졌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이끄는 중도 보수 내각이 재정 개혁안을 들고 나오자, 좌파와 우파 정당들이 나란히 손잡고 내각을 붕괴시키면서다.

프랑스 하원은 8일(현지시간) 정부 신임 여부를 묻는 표결에서 찬성 194표, 반대 364표로 바이루 내각을 불신임했다. 재적 의원 574명(3명 공석) 가운데 과반(288표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다. 프랑스 헌법상 총리는 하원 재적 의원의 과반수가 불신임에 찬성하면 즉각 사퇴해야 한다. 전임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긴축 재정안을 내놨다가 좌우 세력의 협공으로 3개월만에 물러난 데 이어, 바이루 총리 역시 9개월만에 총리직을 내려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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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의회 의사당에 하원의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불신임안 투표 집계 결과가 공개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루 총리는 지난 7월 “국민들이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한다”며 440억 유료(약 66조 원) 규모의 예산 삭감안을 내놨다. 프랑스의 지난해 재정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8%에 달한다. 유럽연합(EU)이 규정한 적자 한도(GDP 대비 3%)를 훌쩍 넘긴 수준이다. 공공부채 역시 GDP의 113%로, 유로존에서 그리스·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바이루 총리는 국방을 제외한 정부 지출 동결, 공휴일 이틀 폐지, 세수 확대를 통해 재정위기를 타개하려고 했다. 에리크 롱바르 프랑스 재무장관 역시 지금처럼 지출을 했다가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입할 위험이 있다”며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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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의 신임 투표를 앞두고 낭트 시청 앞에 꼬깔모를 쓴 시위대가 "바이루 작별 파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수막엔 "잘가, 바이루"라고 쓰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재정 개혁안은 “복지와 민생에 대한 타격”이라는 좌우 모두의 공격만 받았다. 프랑스 혁명 이래 기본 철학인 ‘형제애적 사랑’에 대한 위배라는 명분도 내걸었다. 사실 저소득 서민층을 기반으로 하는 좌파 정당들과 노년층을 지지 세력으로 둔 우파 정당들 모두 사회보장과 연금·복지 체계를 통한 재정지출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게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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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의 신임 투표를 앞두고 낭트 시청 앞에 꼬깔모를 쓴 시위대가 "바이루 작별 파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루 내각을 끌어내린 좌우 정당들은 내친 김에 정권 탈환에 시동을 걸고있다.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은프랑스(LFI)’는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고, 극우 국민연합(RN)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자고 요구하고 있다. 중도보수 총리를 잇달아 지명하며 재정 개혁을 막후에서 지휘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무릎 꿇리겠다는 계산에서다. 현지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오는 10일과 18일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카드는 많지 않다. 하원에서 가장 큰 세력을 보유한 좌파 정당 출신에서 총리를 지명하면 재정 개혁이 후퇴하고, 총선을 다시 치렀다가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 세력이 의회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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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프랑스 낭트의 한 거리 벽에 "9월 10일, 우리는 모든 것을 봉쇄한다"란 문구와 봉쇄 지점이 표시된 지도가 그려진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정국을 바라보는 국제시장의 눈길은 차갑다. 당장 12일에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의 신용등급에 대한 재평가 발표가 예고돼있다. 피치는 2023년 4월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한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재정 불건정성을 이유로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췄다.

프랑스에서 ‘복지 국가 중독’(addiction à l’État-providence)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는 현 상황을 타개할 만할 해결책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정치평론가 알랭 뒤아멜은 “과거엔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라는 대안이 있었다”며 현재의 정치 리더십 부재를 아쉬워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현지 전문가들을 인용해 “결국 경제 위기가 닥쳐야 프랑스 정치인들과 국민 여론은 문제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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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바이루(왼쪽) 프랑스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파리의 호텔 데 앵발리드 안뜰에서 프랑스군 전 참모총장 티에리 부르크하르의 작별식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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