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머독제국' 상속전쟁 장남 승리…세 동생은 현금 1.5조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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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94)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싼 싸움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머독이 후계자로 낙점한 보수 성향의 장남이 다른 형제자매의 지분까지 넘겨 받아 그룹의 지배 구조를 장악하면서다. 머독의 다른 세 자녀는 지분을 포기하는 대가로 각각 11억 달러(약1조5000억원)씩을 상속받기로 했다.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지난 2016년 루퍼트 머독(가운데)이 장남(왼쪽), 차남과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머독 가문은 8일(현지시간) “장남 라클런 머독이 폭스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 영국의 더 타임스 등을 포함한 머독 제국 전반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머독이 거느리고 있는 TV 방송과 언론사는 기존의 보수적인 보도 방침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머독이 설립한 방송기업 폭스코프와 신문·출판 기업 뉴스코프의 수익은 각각 160억 달러(약22조2000억원)와 85억 달러(약11조8000억원)에 이른다.
머독의 네 자녀 간 갈등은 2023년 9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머독이 같은해 12월 장남인 라클런에게 의결권까지 몰아주려고 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머독은 1999년 두번째 아내인 애나 마리아와 이혼할 당시 가족신탁을 통해 장녀 프루던스(67)와 차녀 엘리자베스(57), 장남인 라클런(54), 차남 제임스(53)에게 동등한 의결권과 발언권을 약속했다. 머독이 경영권을 라클런에게 물려줬지만 세 자녀들이 합심한다면 라클런을 언제든지 몰아낼 수 있는 구조였다.

루퍼트 머독(오른쪽)과 그의 장남 라클란 머독.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7월부터 네바다주 법원에서 승계 문제를 놓고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당시 법원에서 머독은 “이 기업들은 내 유산이고 여기에 평생을 바쳤다”며 “영어권 세계의 보수 목소리를 지키는 수호자이자, 이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리더는 라클런”이라고 주장했다. 머독은 폭스뉴스와 WSJ 등이 현재의 보수적인 편집 방향을 유지해야 회사의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독과 장남 측의 가족신탁 변경 요구는 같은해 말 법원에서 기각됐으나 이후 항소 과정에서 극적 합의가 성사됐다.
합의에 따르면 라클런과 이복 여동생인 그레이스(24), 클로이(22)로 구성된 새로운 가족신탁이 폭스코프와 뉴스코프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그레이스와 클로이는 머독이 세번째 부인인 웬디 덩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이다. 이 신탁의 유효기간은 2050년까지다. 다른 세 자녀는 기존 신탁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각각 11억 달러(약1조5000억원)의 지분 매각 대금이 담긴 새로운 신탁을 받게 된다. WSJ에 따르면 세 자녀는 향후 폭스코프나 뉴스코프 주식을 직접 매입하지 않는다는 계약도 체결했다.

루퍼트 머독과 그의 아내 엘레나 주코바 로이터=연합뉴스
머독 가문에서도 장남과 차남의 정치적 성향은 극명하게 갈렸다. 라클런은 아버지 머독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왔다. 2020년 대선 이후 트럼프가 제기한 ‘부정 선거’ 의혹을 폭스 뉴스가 동조하는 과정에서 라클런도 이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차남인 제임스는 2020년 대선에서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 캠페인에 아내와 함께 100만 달러(약13억8000만원) 이상을 기부했다. 또 뉴스코프와 폭스뉴스가 기후변화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머독 가문의 정치적 분열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 HBO가 방영한 드라마 ‘석세션(Succession)’의 소재로도 쓰였다. 거대 미디어 재벌 가문의 후계 싸움을 다루는 내용이다.
NYT는 이번 합의를 놓고 “누구에게나 승리로 보일 수 있는 결과”라고 보도했다. 라클런의 입장에서는 지배 구조를 명확히 했고, 다른 세 형제자매는 이미 상속받은 유산 외에 추가로 현금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루퍼트 머독은 미국, 영국, 호주에서 지난 40년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이번 결정으로 그 영향력을 사후까지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1931년 호주에서 태어난 머독은 22세 때 갑자기 사망한 부친으로부터 작은 지역 신문사를 물려받았다. 그는 1964년 호주에서 최초로 전국 일간지를 창간한 뒤 1968년에는 영국 언론시장에 진출했다. 이어 1970년대 뉴욕포스트에 이어1980년대에는 20세기 폭스까지 인수하면서 세계적인 미디어 제국의 수장이 됐다. 그러나 후계자 싸움으로 말년에 다른 자녀들과 소원해졌다. 지난해 6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러시아 과학자 출신인 엘레나 주코바와의 다섯번째 결혼식에는 장남 라클런만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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