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성폭행 저항, 상대 혀 절단 유죄’ 최말자씨 61년 만의 재심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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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전 성폭행범 혀를 깨물어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재심 선고공판을 기다리고 있다.뉴스1
“피고인 최말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10일 오후 2시 부산지법 352호 법정에서 열린 최말자(78)씨 중상해 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김현순 형사5부 부장판사는 “증거와 기록에 의하면 중상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피고인의 정당방위가 인정된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檢 수사선 “남자 불구 만든 책임져라”
이날 최씨가 법정에 선 건 18세이던 1964년 5월 6일 경남 김해군(현 김해시)에서 성폭행을 시도하며 입을 맞추려는 노모(당시 21세)씨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성범죄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최씨는 가해자가 돼 수사를 받아야 했다.
경찰은 최씨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였다. 노씨에겐 강간미수와 특수주거침입, 협박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사건은 검찰에서 뒤집혔다. 최씨는 중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노씨는 강간미수 혐의는 빠진 채 특수주거침입ㆍ특수협박 혐의로만 기소됐다.

1964년 성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고의에 의한 상해'로 구속 수사 및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 씨가 2023년 5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탄원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결과 최씨는 1965년 1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씨(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보다 무거운 형이다. 최씨는 당시 검찰 수사에 대해 “검사들은 악랄했다. ‘남자를 불구로 만들어 놨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사람(노씨)한테 시집가라’는 등 말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최씨 사건은 형법 교과서에 ‘정당방위 불인정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1995년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발간한 법원사에선 ‘강제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됐다.
“조사 필요하다” 대법원이 연 재심
최씨는 여성ㆍ인권단체 등 도움으로 2020년 5월, 사건 발생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듬해 2월 부산지법, 9월 부산고법 모두 이를 기각했다.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차준홍 기자
최씨는 포기하지 않고 2021년 9월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는 과정에선 이가 6개나 상하는 등 건강이 나빠졌다. “만약 내가 이걸(재심) 못 보고 가면 마무리를 꼭 해달라”고 주변 지인에게 부탁도 했다고 한다.
3년 넘는 심리 끝에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18일 최씨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해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별다른 조사 없이 청구를 기각하는 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64년 성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고의에 의한 상해'로 구속 수사 및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씨가 2023년 5월 31일 오후 대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최말자 할머니 옆은 그의 조력자인 윤향희씨. 연합뉴스
재심에서 검찰은 최씨에게 사과했다. 지난 7월 2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에서 정명원 부산지검 공판부장검사는 “성폭력 피해자인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사죄드린다”며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검찰 구형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법정에서 직접 최씨에게 사과하진 않았다. 법정을 나선 최씨는 재심에 도움을 준 변호사, 여성단체 회원 등과 “최말자가 무죄를 받았다. 최말자가 해냈다”고 외쳤다.
이구영 법률사무소 사름 대표변호사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사회 변화가 최말자씨 사건 재심 개시와 검찰의 사과, 무죄 판결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재심 결과에 따라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위한 ‘상당한 사유’의 범위가 다소 완화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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