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6성급 리조트' 생긴다던 그 섬, 2년째 도로조차 없다…무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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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충남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 마을 안으로 통하는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 들어가자 원형으로 된 교차로에 ‘대명리조트’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다. 교차로의 이름은 ‘대명교차로’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대명리조트로 향하는 길은 도로가 아닌 야산으로 가로막혔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도로에 '대명교차로'가 설치돼 있다. 대명소노그룹은 2023년 9월 원산도에 1200개 객실 규모의 리조트를 짓겠다며 기공식을 개최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대명리조트 사업 부지를 찾아 야산의 좁은 비포장길을 걸어서 15분쯤 올라가니 오로봉 봉수대와 오봉산해수욕장, 대명리조트를 가르키는 이정표가 나왔다. 봉수대와 해수욕장 쪽은 차량 통행은 어려워도 걸어서 갈 수 있었지만, 대명리조트 사업 예정지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원산도 주민들은 “2년 전 도로 표지판과 이정표가 설치됐지만, 리조트가 언제 들어설지는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2023년 9월 1500개 객실 리조트 기공식
보령 원산도에 들어설 예정이던 대규모 리조트가 좌초 위기에 놓이면서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리조트를 건설하겠다던 회사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 대한민국 최고의 리조트를 만들겠다”며 2년 넘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다 충남도와 보령시는 “권한이 없다”며 뒷짐만 쥐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리조트 건설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 “언제까지 희망고문만 할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충남도와 대명소노그룹은 원산도에 객실 1500개 규모의 대규모 리조트(소노호텔앤리조트 원산도)를 짓겠다며 2023년 9월 기공식을 개최했다. 당시 대명소노그룹은 “2028년 리조트를 완공한 예정으로 국내에 짓는 마지막 리조트가 될 것”이라는 청사진을 밝혔다. 6성급 시설로 원산도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에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감각의 핀란드식 목조 건축 양식을 접목하겠다며 조기 착공 의지를 밝혔다. 리조트가 문을 열면 고용효과 4만3000여 명, 생산유발 효과 2조4700억원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2023년 9월 15일 충남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에서 열린 소노호텔앤리조트 기공식에서 김태흠 충남지사와 참석자들이 버튼을 누르고 있다. [사진 충남도]
하지만 기공식 2년이 지나도록 첫 삽은커녕 사업 예정지로 들어가는 길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본지가 살펴본 사업 예정지 주변은 소형 트럭이나 승용차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비포장도로가 전부였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리조트가 들어서는 장소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사업 예정지는 잡목과 쓰레기만 나뒹굴었다. 주민들이 사업 중단을 우려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도로에 '대명리조트' 안내판…산길에 막혀
리조트 착공이 지연되자 지역 정치권도 충남도와 보령시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보령이 지역구인 충남도의회 편삼범 의원(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임시회 도정질의에서 “소노그룹은 티웨이 항공사를 인수해 사업을 확대하면서도 리조트 건설은 지연시키고 있다”며 “이러다가 (리조트 건설) 사업이 불발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편 의원은 “사업 착수 기한을 2년을 넘기면서 관광지 지정과 조성계획 승인이 효력을 상실할 우려도 제기된다”며 “주민과 약속했고 보령시와 협약을 체결한 만큼 소노그룹은 더는 공사를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산 능성에 '대명로타리' 방향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설치돼 있다. 대명은 2023년 9월 원산도에 대규모 리조트를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대명소노그룹은 지난해 10월 충남도와 관광사업 착수기한 연장을 신청했다. 2022년 11월 관광단지 지정계획 승인을 받고 2년 이내에 착공하는 게 원칙이지만 대내외적 여건 때문에 착공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충남도는 대명소노그룹의 신청을 받아들여 기한을 1년간 연장했다. 조기 착공을 기대했던 주민들은 보령시와 충남도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대명그룹, 지난해 착수기한 연장 신청
대명이 신청한 연장기한 만료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도청 내부에서는 “1년 추가 연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지난 7월 남해에 리조트를 오픈한 소노그룹은 현재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소노그룹이 경주에 있는 리조트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는 것도 원산도 리조트 착공 지연의 원인으로 꼽힌다. 사업이 지연되면서 애초 1500개로 예정됐던 객실이 500개로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충남도 박정주 행정부지사는 “(소노그룹이) 애초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면서 주민의 실망감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건설 경기 침체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여건 악화 등으로 투자가 위축된 상황이지만 회사 측에 사업 착수를 독려하겠다”고 해명했다.

2023년 9월 15일 충남 보령시 원산도에서 열린 소노호텔앤리조트 기공식에서 김태흠 충남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충남도]
대명소노리조트 건설 사업이 지연되면서 관련 사업도 줄줄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충남도는 리조트를 중심으로 원산도를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원산도 오섬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리조트를 포함해 해상 관광 케이블카 설치, 선셋 아일랜드 바다역 건설 등이 포함됐다. 민자사업으로 건설하는 해상 케이블카는 8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지만, 사업자 측이 ‘리조트 준공 후 건설 추진’을 조건으로 내걸어 착공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충남도·보령시 "착공 독려하겠다" 답변만 되풀이
보령시 관계자는 “소노그룹 측과 수시로 협의하며 조기 착공을 요청하고 있지만, 올해 안에 공사를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업자가 추진 의지를 가진 만큼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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