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냉온탕 오가는 미국에…"이래서야 투자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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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UPI=연합뉴스
미국과의 관세 후속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데다 비자 제도 개편 문제를 놓고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발언이 이어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대미 투자를 확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들(한국 기업)이 한 일은 관광 비자로 들어와 그냥 공장에서 일한 것”이라며 “옛날 방식으로 해선 안 된다. 적법한 절차를 밟아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측에 ‘제발 제대로 된 비자를 받으라. 문제가 있으면 내게 직접 연락하라. 내가 크리스티 놈(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전화해 돕겠다’고 말했다”라고도 전했다.
업계에선 전문직 종사 외국인이 받는 H-1B 비자가 추첨제로 운영되는 데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한참 모자란 현실을 간과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악시오스도 “업체가 상무부 장관에게 전화해서 규칙을 어기지 않고도 충분한 양의 올바른 비자를 받을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은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뿐 아니라 단기상용비자(B1)를 상당수 발급받았기 때문에 ‘관광 비자로 들어왔다 그냥 일했다’는 발언도 사실과 다르다. 국무부 외교업무 매뉴얼 상 B1 비자로도 현장 장비 설치나 시운전은 가능하지만, 구체적인 업무 범위를 놓고 기관마다 해석이 다른 상황이다.
한미 당국이 워킹그룹(실무조직)을 만들어 비자 개편 문제를 협의하기로 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백악관은 “(비자 문제 관련) 후속 조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었다. 협의가 늦어질수록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올스톱’ 상태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떠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은 최소 2~3개월 공장 지연이 예상된다. 당장 현지에 남겨진 짐 정리, 렌터카 반납 등 뒤처리를 할 인력도 부족하다고 한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만의 문제는 아니다. 삼성SDI와 SK온 등 배터리 3사는 현재 미국에서 가동을 시작한 공장을 제외하고도 54조원을 투자해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이민단속으로 체포됐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1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에서 나오며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와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관세 후속 협상이 교착 상태라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11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그 (한미 간 무역)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과의 협정 사례를 들며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에서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날 러트닉 장관 발언과 관련해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최종 타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관세 협상이 최종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입을 타격이 크다. 한국산 자동차는 현재 미국 수출시 관세 25%를 물리고 있어 곧 일본차 관세가 15%로 낮아지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번 조지아 구금 사태에 대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11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오토모티브 콩그레스’에서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겠다”며 “미국은 현대차그룹에 가장 크고 중요한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관세 불확실성이 장장기화하면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 계획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 중인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투자 판단시 중요하게 고려했던 미국 시장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이 깨졌다는 것”이라며 “약속을 해도 언제든 말을 뒤집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전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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