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美압박 노골화에 대통령실 “레토릭 개의치 않아…국익 최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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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외교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위 실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조지아주 구금 사태로 촉발된 비자 문제에 관해 "현 제도 내 관행을 개선해 우리 기업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12일 미국의 관세 협상 압박에 대해 “개의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 인터뷰에서 “협정을 수용하거나 (인하 합의 이전 수준의) 관세를 내야 한다”고 발언한 데 대해 위 실장은 12일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한·미 간 협상은 진행 중이고 이전과 비슷하게 세부사항에서 많은 입장차가 있어서 조율할 것이 많다. 지켜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위 실장은 “(미국 측이)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레토릭(rhetoric·수사)이 있지만 개의할 필요는 없다”며 “협상장에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한·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미국 측의 수사에 신경을 쓰기 보다 실제 행동에 주목하는 게 맞다는 취지다. “미국은 서두르려는 기류가 있지만 우리는 여러 세부 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위 실장은 “협상하다 보면 어느 영역은 빠르고 다른 영역을 느릴 수 있다”며 “이번에도 그런 현상인데 안보 협상은 대강 큰 틀의 합의를 이뤘지만 관세는 세부사항에서 걸려 있다”고 전했다.

안보 협상의 주요 논점인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에 관해선 “큰 틀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있다”며 “한국이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에서 더 많은 운신의 공간을 갖도록 하는 데 서로 간에 양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원자력 협정은 일정한 균형을 갖고 약간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대로 가면 된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곳곳에서 러트닉 발언과 무관하게 정부가 신중하게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이날 미국 이민 당국에 구금됐다가 석방된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귀국하는 인천국제공항에 마중나간 자리에서 “미국과 협상은 이제 뉴노멀 시대”라며 “매번 기준은 달라지고 끊임없이 협상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러트닉 장관의 발언 하나하나에 대응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해 나갈 것”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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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귀국한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 박윤주 외교부 1차관.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전날 회견에서 한·미 협상과 관련해 “분명한 건 저는 어떤 이면 합의도 하지 않는다”며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관세 협상에 최종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이익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인을 왜 하는 것이냐”며 “최대한 합리적인 사인을 하도록 해야 한다. 사인 못 했다고 비난하지 말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 발언 이후에 러트닉은 일본이 대미 관세 협상 문서에 서명한 것을 거론하며 “유연함은 없다”며 “선택지는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한·미는 지난 7월 30일(미국 현지시간) 관세 협상을 큰 틀에서 마무리했지만 이후 한국의 3500억 달러(약 486조원) 대미 투자 기금 조성 방식과 수익 배분 문제, 농축산물 수입 문제 등 각론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러트닉의 발언은 ‘미국의 요구를 한국이 수용하지 않으면 합의한 15%가 아니라 합의 이전 수준인 25%를 관세로 내라’는 취지다.

대통령실은 12일 구금된 한국인이 무사 귀국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린 분위기다. 그러나 물밑에선 거칠어진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한 당혹감도 흘렀다. 익명을 원한 여권 관계자는 “러트닉 발언은 아직도 이견이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자동차 업계가 보는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면 정부 입장에선 점점 압박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미국과의 마찰은 이재명 정부에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국갤럽이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지난 9일~11일 조사해 12일 발표한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5%포인트 하락해 58%를 기록했다. 지난주 조사에서는 60%대를 회복하며 지지율 반등세를 보였지만, 한 주 만에 다시 하락한 것이다. 한국갤럽은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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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춘천 강원창작개발센터에서 ‘강원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런 가운데 이 대통령은 이날 강원도 춘천시에서 주재한 타운홀 미팅에서 “강원도와 같은 접경 지역이 치르는 특별한 희생을 다 보상해드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라도 강원도에 산다는 것이 억울하지 않도록 각별한 배려를 하겠다”고 말했다. 또 “어떤 지역도 특별히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자 정치를 시작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됐으니 (실천)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이 대통령이 함께 무대에 자리한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지사의 발언을 거듭 제지하는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한 참석자의 질문에 김 지사가 부연 설명에 나서려 하자 “지사님은 좀 참으시죠”, “나중에 하시라. 우리 도민 얘기 듣는 자리”라고 거듭 제지했다. 이후에도 또 다른 참석자의 질문에 김 지사가 “간단히 말씀드리겠다”고 재차 끼어들자 이 대통령은 거듭 “대통령과 도민이 대화하는 자리로, 제가 물어볼 게 있으면 묻겠다”고 막아섰다. 이 대통령은 행사 말미에 정면을 응시하며 “김 지사님 말씀 들으면 좋은데 오늘(12일) 자리의 취지는 그게 아니다”며 “꼭 강원도 입장에서 할 말이 있으면 대통령실로 따로 문서를 보내주면 제가 한 번 보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타운홀 미팅 이후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육군 제7보병사단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장병들에게 “훈련은 실전처럼 하되 늘 안전을 최우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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