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산호 죽이는 선크림…꽃가루서 해법 찾아낸 한국인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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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준 난양공대(NTU) 교수팀이 개발한 꽃가루 선크림을 손에 바른 모습(왼쪽)과 원료로 활용된 동백꽃 꽃가루(오른쪽). 사진 NTU
강렬한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면서도 해양 생물에게 무해한 천연 선크림을 한국인 과학자가 개발했다. 세계 최초로 꽃가루를 활용해 만든 자외선 차단제(선크림)다.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Singapore)의 조남준 교수 연구팀은 최근 재료 분야의 국제 학술지(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동백꽃에서 추출한 세계 최초의 꽃가루 기반 선크림을 발명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의 실험 결과, 꽃가루 기반 선크림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일반 선크림과 마찬가지로 해로운 자외선(UV)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차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PF 30 수준으로 자외선의 약 97%를 차단했다.
선크림 산호에 바르자 놀라운 결과 나와

일반 선크림과 꽃가루 선크림이 산호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 실험한 결과. 화학성분이 포함된 선크림을 바른 산호에서 백화 현상이 관찰됐다. 조남준 교수 제공
연구팀이 더 주목한 건 선크림이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해변에서 주로 사용하는 선크림은 바다로 들어가면 해양생물, 특히 산호초에 치명적이다. 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방출하는 옥시벤존 같은 화학물질이 산호 내부로 들어가면 독소로 변한다.
매년 약 6000~1만 4000t의 선크림이 사람들을 통해 씻겨 내려가거나 폐수로 흘러들어 바다로 유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하와이나 팔라우 등에서는 옥시벤존 등이 함유된 선크림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연구팀은 꽃가루 기반 선크림이 기존의 선크림과 달리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유해 화학성분이 들어간 선크림을 산호에 발랐더니 2일 만에 하얗게 변하는 백화 현상(Coral Bleaching)이 나타났으며, 6일째에는 산호가 죽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꽃가루 기반 선크림을 바른 산호는 60일이 지나도 건강을 유지했다.
조남준 NTU 재료과학·공학 교수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연이 이미 보유한 자외선 차단 메커니즘, 즉 꽃가루 외벽의 보호 기능에 주목했다”며 “특히 동백꽃은 자가수분 식물이라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거의 유발하지 않고, 자외선 차단 성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꽃가루 선크림은 자외선 차단뿐 아니라 피부 온도를 5도가량 낮추는 냉각(쿨링) 효과도 있는 것으로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이는 꽃가루가 가시광선·근적외선 영역에서 빛을 덜 흡수해 피부에 열이 적게 쌓이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꽃가루에 꽂힌 과학자 “다양한 분야로 확장”

조남준 난양공대(NTU) 교수(오른쪽 아래)와 연구진들이 동백꽃 꽃가루를 활용해 개발한 선크림을 들고 있다. 사진 NTU
꽃가루는 ‘식물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릴 정도로 단단하고 안정성이 뛰어나다. 꽃가루는 번식을 위해 암술에 가서 식물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데, 혹독한 환경에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한 외벽을 갖고 있다. 재료공학자인 조 교수가 꽃가루의 활용도에 주목한 이유다.
그는 과거 꽃가루를 활용해 기름을 흡수하는 능력을 지니면서 여러 번 재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스펀지를 개발하기도 했다. 해양 기름 유출과 같은 수질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꽃가루 선크림 역시 기존 선크림 성분이 인체에는 유용하지만, 바다에 흘러 들어가면 산호초를 죽이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조 교수는 “(꽃가루 선크림)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다음 단계”라며 “앞으로는 선크림뿐 아니라 3D 프린팅 바이오 잉크, 약물 전달체 등 다양한 분야로 꽃가루 소재 기술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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