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美 구금’ 근로자 무사 귀환했지만…재계, 비자·투자 리스크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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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체포·구금됐다 풀려난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인 근로자들이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족과 만나 끌어안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기습 단속으로 무더기 구금된 대기업과 협력사 직원이 단속 8일 만에 한국으로 무사 귀환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대(對)미 투자를 늘리기로 한 한국 기업은 비자부터 장기 투자까지, 사업 전략의 궤도 수정에 들어갔다.

미국 조지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LG엔솔)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체포·구금된 LG엔솔과 협력사 인력 330명(한국인 316명, 외국인 14명)이 12일 전세기편을 통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단속 이후 8일 만이다.

급한 불은 껐지만 미국에 진출한 상당수 기업은 고심에 빠졌다. 10대 그룹 계열사 중 삼성전자·삼성SDI·SK하이닉스·SK온·현대모비스·현대제철·한화큐셀 등 LG엔솔·현대차와 마찬가지로 현지에서 공장 신·증설을 하는 곳만 따져도 줄잡아 20여 개사에 달한다.

당장은 해결되지 않은 비자 문제가 현지 진출의 발목을 잡는다.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비자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서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ESTA(전자여행허가) 또는 B1(단기 상용) 비자로 미국으로 출장을 떠날 경우 불이익이 있는 건 아닌지 사내 문의가 늘었다”며 “법무실과 자문 계약을 맺은 로펌을 통해 적법한 비자를 받아 나가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ESTA로 직원이나 협력사를 보내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LG엔솔은 고객사 면담을 제외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했다. 현대차는 필수가 아닐 경우 미국 출장을 보류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한 달 이상 텍사스 등 반도체 공장으로 출장을 나갈 경우 주재원(L-1) 비자를 받도록 공지했다. 하지만 정식 비자를 발급받기 어렵고, 발급받더라도 오래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선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가전쇼(CES)에도 불똥이 튀었다. 단순 참관은 ESTA 범위 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하지만 CES 같은 대형 전시회를 준비하려면 최대 수십명까지 직원을 동원해야 하는 만큼 미국 당국이 예민하게 해석할 수 있다. ‘CES 2026’에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대규모 부스를 꾸릴 예정인 현대차는 예년보다 늦은 10월 중 출장 인원·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인 등 해외) 전문가를 (미국에) 불러들여 훈련해 미국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국 전문 인력에 대한 비자 제도 개선을 언급했다. 한·미 정부 간 협의로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E-4)’를 신설하는 등 대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공장을 일정대로 완공하려면 당장 한국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미국 현지 공장에 파견된 적 있는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미국인은 반도체·배터리 공장 근무를 ‘3D(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로 여겨 피한다”며 “결국 숙련된 한국 인력이 현지로 나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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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한국 경제사절단. 왼쪽부터 구자은 LS 회장, 김상현 롯데 부회장, 이재현 CJ 회장, 허태수 GS 회장,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한경협 제공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대규모 투자 판단 시 중요하게 고려한 미국 시장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이 무너졌다는 점도 문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수조 원, 수십조 원을 들여야 하는데 (비자처럼) 다른 문제가 발목을 잡는 상황이 속출하면, 어떤 회사가 공격적으로 대미 투자를 늘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한국인 구금 사태는) 매우 안타깝지만, 회사 입장에서 미국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며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많은 투자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대차처럼 미국 시장에 ‘깊숙이’ 발을 담근 회사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회사 간 온도 차는 있다. 한 정보기술(IT) 업체 관계자는 “미국 대신 멕시코·캐나다 등 대체 거점 투자 비중을 늘릴지 검토하고 있다”며 “이미 발표한 투자 계획을 물릴 순 없지만, 최대한 꼼꼼하게 따져가며 느리게 집행하는 식으로 속도 조절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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