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짧아지고, 작아진다…이젠 가볍게 즐기는 문학이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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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이 새로 내놓는 한국문학 시리즈인 '다소 시리즈'. 판형은122*185*16mm. 약 350g이다. 왼편 상단에 키링을 달 수 있는 고리가 나 있다. 사진 다산책방

‘짧고 가벼운’ 소설, ‘한 손에 잡히는’ 시집.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다. 짧은 소설 한 편이 책으로 출간되고, 휴대폰보다 작은 크기의 시집이 등장했다. 최근 한국문학 시리즈 얘기다.

지난 3일 출간된 다산책방의 ‘다소 시리즈’는 경장편~장편 분량의 한국소설 한 편을 한 권의 책에 담은 소설선(選)이다. 이를 기획한 곽수빈 다산책방 편집자는 “최근 책뿐 아니라 서사를 다루는 모든 콘텐트의 호흡이 짧아졌다”며 “116쪽 분량의 클레어 키건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2023)이 많은 분께 사랑받는 걸 보며, 짧은 분량이라도 충분한 밀도를 가진 책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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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시리즈는 3권의 책을 우선 선뵀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조해진, 박민정, 송지현 소설가의 작품이다. 앞으로 참여할 작가는 권혜영, 정기현, 김화진 작가 등 30여명. 사진 다산책방

단편소설(원고지 약 100매 분량)과 장편소설(약 600매)의 중간 길이인 경장편 소설은 200자 원고지 기준 300~500매 분량으로, 책으로 만들면 약 200쪽 내외가 된다. 현재 다소 시리즈는 세 권이 공개됐는데, 평균 130쪽이다.

책의 크기도 작다. 다소 시리즈는 소설 판형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국판 사이즈 148×210(이하 ㎜)나 신국판 사이즈(152×225)보다 작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판형(120×185)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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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출판계열사 '난다'의 시선 '시가 난다' 시리즈의 본책과 더 쏙 시리즈. 더 쏙 시리즈의 판형은 가로세로 길이가 약 2배씩 차이난다. 본책은128*213mm, 더쏙 시리즈는 75*115mm. 사진 난다

소설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문학동네 출판계열사 난다는 지난 5일부터 새로 선보이는 시선(詩選) ‘난다시편’을 통해 김혜순 시인의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나모네』를 공개했다. ‘일반 시집’과 함께, 내용이 같은 휴대용 시집 ‘더 쏙’ 시리즈가 출간됐는데, 일반 시집의 3분의 1 크기였다. 일반 휴대폰보다 작은 75×115 크기다.

김민정 난다 대표는 “휴대폰도 작아지고 얇아지는데, 책도 들고 나가기 쉬운 크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작은 책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자 크기는 일반 시집(10.3포인트)보다 크게 줄이지 않고 9포인트로 정했다”고 말했다.

김민정 대표는 “휴대성이 높아지면 (시 속의) 다양한 어휘를 만나기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격도 더 싸다. 작은 판형의 ‘더 쏙’ 시리즈는 일반 시집(1만3000원)보다 저렴한 8800원으로 책정했다.

작고 가벼운 한국문학 시리즈가 나오는 현상은 짧은 호흡의 콘텐트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독서습관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3일 97번째 책을 출간한 위즈덤하우스의 소설선 ‘위픽’은 출판계에서 이러한 독서문화를 선제적으로 겨냥해 성공한 시리즈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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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 시리즈'. 100*180mm 판형이다. 표지에 작품 속 핵심 문장을 디자인했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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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픽 시리즈는 곧 100권 출간을 앞두고 11월 중 행사를 계획 중이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2023년 3월 시작된 위픽은 전통적으로 계간지나 웹진에 연재 후, 다른 단편들과 묶여 단행본으로 출간되던 단편소설의 관행을 깼다. 위픽을 기획한 김소연 위즈덤하우스 스토리팀 팀장은 “한국문학 편집만 20여년 한 편집자로서, 단편 하나로 책을 낸다는 건 가능할 거라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위픽 기획을 위해 2021년 500여명의 독자를 사전서평단 형식으로 모아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2030 여성이었는데, 길이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재밌는 이야기’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리즈가 50권 정도 쌓이니 판매 속도에 가속이 붙고, 구간(舊刊)의 판매도 같이 늘어나며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짧은 길이의 문학은 소설가와 출판사에도 좋은 기회다. 계약 일정이 빼곡하게 들어찬 소설가에게는 부담 없이 검토할 수 있는 분량이며, 출판사 입장에선 그만큼 빠르게 다음 시리즈를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위픽 초창기인 2023년 위픽 시리즈에 참여해 단편 『마유미』를 선봰 이희주 소설가는 “소설가 입장에선 잡지·단편집 외에 단편을 선보일 선택지가 하나 늘어났다고 느낀다”며 “북토크에서 만난 독자들도 한 권을 읽은 만족감을 충분히 느끼고 계셔서 이후 작업할 땐 분량 걱정을 덜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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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시리즈 책 표지는 사진과 같이 책갈피, 스티커 등으로 꾸밀 수 있다. 사진 다산책방

누구나 소장하고 싶도록 디자인한 것도 최근 등장하는 문학 시리즈의 특징이다. 김소연 팀장은 “최근엔 책이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재인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표지 디자인, 제본방식, 종이 질감 등을 신경 썼다”고 전했다.

다소 시리즈는 젊은 독자들의 놀이문화인 ‘책꾸’(책 꾸미기의 줄임말)를 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됐다. 표지의 투명 PVC를 벗겨 독자 마음대로 꾸미거나, 소설가에 대한 정보가 녹아있는 북 태그를 굿즈처럼 수집할 수도 있다. 책 상단에는 키링을 달 수 있는 고리도 있다.

곽수빈 편집자는 “(분량과 디자인을 통해) 독자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했지만, 책이 굿즈화되는 것은 최대한 경계하며 만들었다”며 “본문 뒤에 소설가의 일기와 책상 사진을 넣어 소설가가 가깝게 느껴지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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