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천하의 골프 여제도 육아는 고되다?…박인비 “현역 복귀는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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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더 시에나 서울 컨트리클럽에서 만난 박인비. 화려했던 현역의 삶을 잠시 뒤로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고봉준 기자

골프채 잡는 시간보다 아기용품 챙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언제나 물아일체였던 골프 감각도 예전 같지는 않다. 그래도 지금의 삶이 고단하지만은 않다. 자신을 따라 클럽을 휘두르는 딸을 보면 그간의 스트레스가 저 멀리 달아난다. 덩달아 골프를 보는 시야도 더욱 넓어지고 다채로워졌다.

‘골프 여제’에서 ‘연년생 엄마’로 변신한 박인비(37)를 지난 13일 경기도 광주시의 더 시에나 서울(옛 중부 컨트리클럽)에서 만났다. 지난해 10월 둘째 출산 이후 모처럼 만의 인터뷰라는 박인비는 “30개월 첫째와 11개월 둘째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연년생 막내가 생기니 두 배가 아니라 열 배로 힘이 든다. 그래서 오늘 같은 외출이 살짝 반갑기는 하다”면서 “비록 현역 시절이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간간히 라운드도 하고 TV로 후배들의 경기도 본다. 또, 앞으로의 진로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보다 수다(?)가 늘어난 박인비와의 인터뷰는 1시간을 훌쩍 넘겼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21승을 거둔 박인비는 설명이 필요 없는 전설이다. 2007년 데뷔한 뒤 이듬해 US여자오픈을 제패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2015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어 2016년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연소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됐고, 같은 해 열린 리우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따내며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이후에도 현역으로 활약하던 박인비는 2022년 8월 브리티시여자오픈을 끝으로 필드와 멀어졌다. 2023년 4월 첫째 딸 인서를 낳고, 지난해 10월에는 둘째 연서를 출산하면서 선수의 짐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후에는 육아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나 친분이 두터운 연예인(원빈-이나영 부부, 이민정)과의 사적 만남으로 근황을 알린 박인비는 “요새는 특별하지 않은 육아의 일상이 반복된다. 하나까지는 괜찮았는데 연년생을 키우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고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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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올림픽 여자골프 메달리스트인 리디아 고와 박인비, 펑샨샨(왼쪽부터).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인비와 관련된 최대 관심사는 역시 현역 복귀 여부다. 돌아올 뜻이 있는지, 있다면 언제쯤일지 묻자 예상보다 단호하게 “솔직히 선수로서 복귀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인비는 이어 “경쟁력을 다시 갖추는 것이 쉽지 않다. 애들을 놓고 다닐 생각을 하니까 더욱 힘들다. 대신 훗날 행정가로 나설 생각은 있다. 스웨덴의 골프 전설인 안니카 소렌스탐이 회장으로 있는 세계골프연맹(IGF)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천하를 호령했던 골프 여제의 요즘 실력은 어떨까. 박인비는 “이제는 잘 치는 아마추어 정도”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증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인터뷰 때 곁을 지킨 친구 최나연은 “원래는 인비가 나서서 만남을 정하는 스타일 아니다. 이제는 다르다. 얼마 전 V157(박인비와 최나연, 신지애, 이보미 등의 친구 모임) 라운드도 인비가 주도했다”면서 “다만 실력은 당연히 예전 같지는 않다. 우리끼리 ‘저 아줌마 거리 좀 나온다’고 놀리는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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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인 박인비(왼쪽)와 최나연이 13일 더 시에나 서울 컨트리클럽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봉준 기자

대화의 화두는 자연스레 최근 한국 여자골프로 향했다. 박인비를 비롯한 1980년대생 선수들이 대거 떠난 지금, 한국은 LPGA 투어에서 이전과 같은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박인비가 활약할 때는 1년 15승도 합작했지만, 지금은 5승을 채우기가 버겁다. 올 시즌에도 한국 선수들의 우승 횟수는 현재까지 4승이다.

박인비는 “후배들이 LPGA 투어 진출을 꺼리는 이유는 이해한다.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해외에서 뛰면 국내 스폰서 계약이 끊길 수도 있다”면서 “그래도 후배들이 계속해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상급 선수들이 있는 곳에서 뛰어야 느끼는 바가 많다. 또, 요새는 LPGA 투어 상금도 워낙 많이 올라서 동기부여가 된다고 본다”고 했다. 끝으로 박인비는 “요새 트렌드는 결국 비거리더라. 내 클래식한 관념으로는 ‘힘만 앞세우는 골프가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흐름은 분명하다. 비거리를 확실하게 갖춘 후배들이 계속해서 LPGA 투어의 문을 두드렸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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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더 시에나 컵이 13일 더 시에나 서울 컨트리클럽(옛 중부 컨트리클럽)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고 있는 박인비. 사진 더 시에나 그룹

한편 이날 박인비는 최나연, 유소연, 유현주, 김지영 등 동료들과 함께한 더 시에나 컵을 통해 모처럼 팬들도 만났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더 시에나 컵은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모토로 참가자들의 성급과 그룹의 기부를 매년 뜻깊은 곳으로 전했다. 첫 해 때는 지역 취약계층 아동 지원을 위해 힘을 모았고, 지난해에는 전 세계 전쟁 난민과 고아를 위해 기부금을 전달했다. 올해 역시 도움이 필요한 곳은 물론 미얀마 구호 기금으로 참가자들의 성금이 사용될 예정이다.

자신의 장기인 퍼트 원포인트 레슨을 선보여 박수를 받은 박인비는 “선수로서, 또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선의 의미를 담은 무대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또, 더 시에나 서울의 새로운 출발을 이런 뜻깊은 대회와 함께한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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