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전에서 신들린 선방쇼를 펼치며 한국의 승리를 이끈 골키퍼 조현우. 전민규 기자

"저 아무래도 아메리칸 스타일인가봐요."(웃음)

축구대표팀 골키퍼 조현우(34·울산HD)에게 '미국에서만 경기하면 펄펄 날아다니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홍명보(56)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이달 미국에서 두 차례 원정 평가전을 치렀다. 내년 북중미월드컵 개최지 미국을 미리 경험하기 위해서다. 조현우는 첫 번째 평가전이었던 지난 7일 미국 뉴저지주 해리슨에서 열린 미국전에서 눈부신 선방쇼를 펼치며 한국의 2-0 완승을 이끌었다. 골과 다름없는 미국의 결정적인 슈팅을 다섯 차례나 막아냈다.

적장 포체티노 감독도 "조현우 때문에 졌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미국은 1골·1도움을 기록한 간판 골잡이 손흥민(33·LAFC)이 아닌 조현우의 활약을 패인으로 꼽았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미국 감독은 "조현우가 경기의 최우수선수(MVP)다. 믿을 수 없는 선방을 해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축구협회는 "골키퍼 조현우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득점에 실패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조현우는 두 번째 평가전이었던 멕시코전엔 출전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귀국한 조현우를 지난 11일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그는 "골키퍼가 주목받는 경우가 많지 쑥스럽다"면서도 "공격수의 득점으로 팀이 승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론 골키퍼의 선방도 골과 같은 효과가 있단 것을 보여줘서 뿌듯하다. 내게 공이 많이 날아오면 날아올수록 즐겁다"며 미국전 소감을 밝혔다. 조현우가 미국에서 맹활약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현우는 번개 같은 다이빙 선방이 전매특허다. 뉴스1

울산 소속으로 지난 6월 미국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참가했을 때도 신기에 가까운 선방을 선보였다. 당시 울산은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의 강호 도르트문트를 만나 무려 28개의 슈팅을 내주며 크게 밀렸다. 하지만 조현우가 무려 10차례 선방을 기록한 덕분에 울산은 단 한 골만 내주며 0-1로 졌다. 도르트문트 구단이 소셜미디어(SNS)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올릴 정도로 조현우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조현우는 "난 상대가 강할 수록 투혼이 불타오른다. 게다가 미국과 궁합도 좋다. 북중미월드컵에서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조현우는 2018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거미손'으로 떠올랐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상대가 때린 15개의 유효슛 중 12개를 막아냈다. 특히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독일을 상대로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카잔의 기적(한국 2-0승)'을 이끌었다. 별명 '빛현우'도 이때 생겼다. 조현우가 해외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덴 학창 시절부터 지켜온 식습관이 한몫했다.

안면 보호용 마스크 낀 조현우. 그는 부상 투혼도 마다하지 않는다. 연합뉴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축구화를 신은 조현우는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1m83㎝까지 자랐다. 하지만 빼빼 마른 체형 탓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단 한 차례도 연령대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그는 이때부터 식사량을 늘렸다. 음식은 가리지 않았다. 해외 전지훈련을 가면 현지 음식을 조달해 꾸준히 섭취해 체격을 키웠다. 덕분에 그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웬만해선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컨디션도 좋을 수밖에 없다.

조현우는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지독한 노력파로 통한다. 그는 경기를 뛰고 나면 체중이 4~5㎏이나 빠진다. 보통 골키퍼는 90분간 7㎞ 정도 뛰는데, 조현우는 그보다 3㎞나 더 많은 10㎞ 뛰기 때문이다. 그만큼 활동 범위가 넓고 체력이 좋다. 경기 막판에도 번개 같은 속도로 펼치는 '다이빙 선방'은 그의 전매 특허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2024시즌 K리그 국내 선수 '연봉킹'(14억9000만원)에 올랐다. 조현우는 "평소 '나는 신인이다'란 마음으로 뛴다. 그래야 훈련이든 관리든 게을리하지 않는다. 당분간은 후배들에게 밀릴 생각이 없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