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기업 법인세 부담 늘어나나…대법 "해외 특허, 韓서 쓰면 세금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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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 등록되지 않고 미국에만 등록된 특허권 사용료도 과세 대상이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1992년 이후 33년 만의 판례 변경이다. 이날 판결로 국세청은 그동안 불복 소송이 제기돼 온 약 4조원 규모의 세금을 환급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미국에 특허 사용료 지급, 제품 판매는 한국…세금은 어디에?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18일 오후 SK하이닉스가 이천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경정거부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사건은 2011년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당한 특허권 침해 소송에서 출발한다. 2013년 SK하이닉스는 미국 특허관리 회사 A사에 사용료로 5년간 매년 16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하고 분쟁을 마무리했다. SK하이닉스는 2014년 1월 사용료를 지급한 뒤 '한미조세협약'에 따라 한국에 원천징수분 법인세 3억1000만원을 납부했다.
SK하이닉스는 이후 "이 특허는 한국에 등록되지 않았으니 국내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며 세무서에 법인세 환급을 청구했다. 세무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SK하이닉스는 2019년 11월 세무서의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6년간 이어진 재판에서는 '한미조세협약'의 해석이 쟁점이 됐다. 한미조세협약은 한미 양국 간 이중과세를 방지하기 위해 1979년 발효된 협약이다. 이 협약은 "특허를 사용할 권리에 대해 대가를 지급한 국가"가 과세권을 갖는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한미조세협약에는 '사용지'를 사용료 소득의 원천지로 판단하면서도 '사용'의 의미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실질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심은 모두 기존 판례에 따라 SK하이닉스의 손을 들어줬다. '특허는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유효하다'는 특허권 속지주의를 따랐다. 특허가 미국에만 등록·출원돼 있으니 해당 특허 기술이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사용됐다 하더라도 국내 과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특허권 사용' 아닌 '특허기술 사용' 따라 과세해야"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대법원은 그러나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대법원은 대법관 10인의 다수의견으로 "사용료가 특허기술을 국내에서의 제조·판매 등에 사용하는 데 대한 대가라면 이는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미국 특허 기술을 사용해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면, 미국 법인에 낸 사용료에 대해 한국이 세금을 걷을 수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한미조세협약에서 규정한 '특허의 사용'은 "특허권 사용"이 아니라 "특허기술 사용"을 의미한다고 봤다. 1979년 발효된 한미조세협약 14조 4항 a호에서 '사용료'를 "특허 또는 이와 유사한 재산의 사용권에 대한 대가"로 규정한 점을 고려했다. 같은 협약 2호 2항은 "이 협약에서 정의되지 않은 기타 용어는 조세가 결정되는 체약국의 법에 따라 내포되는 의미를 갖는다"고 정해 뒀다.
이같은 협약의 문구에 따라 대법원은 '특허의 사용'을 한국 법인세법대로 "특허기술의 제조 등에 사실상 사용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특허권 속지주의'에 대해서는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사용하는 것이 국외 특허권자에 대한 특허 침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뿐, 특허기술에 재산적 가치가 없어 사용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상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도출되지 않는다"며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특허기술을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국외 특허권자에게 대가를 지급하는 라이선스 계약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33년 만의 특허권 과세 판례변경…"수십조 세수 효과"
이는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과세 기준을 약 33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3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노태악·이흥구·이숙연 대법관은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의 사용'은 해당 특허권이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며 "미국 법인에 제공한 사용료는 미국 특허권의 미국 내 실시를 위한 대가일 뿐 그 특허권의 대상인 발명의 국내 사용에 대한 대가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그동안 논란이 되어 온 한미조세협약의 '특허의 사용'이라는 용어의 해석방법 등에 관해 명확히 밝혔다는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이번 판결로 현재 불복 절차가 진행 중인 세액만 4조 원 이상이며, 국내 기업들의 특허 사용료 지급이 계속되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수십조 원의 세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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