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봉준호의 제언 "스토리텔링으로 관객 매료, 본질은 불편"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

본문

17581943929555.jpg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가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봉준호 영화감독이 '창작자에서 설계자로 : 경계를 파괴하는 세계의 구축법'이라는 주제로 마크 톰슨 CNN CEO와 대담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보다 극장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죠. 보는 사람이 ‘일시 중지’ 버튼을 누를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어요. 빠르게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핸드폰으로 영화를 봐요. 이제 창작자는, 너무나 재밌어서 ‘도저히 중지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야 해요. 극장의 환경, 구조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요.”

18일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이다. 그는 대담자인 마크 톰슨 CNN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넷플릭스 등 OTT가 나오며 사람들이 극장에 가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이렇게 답했다.

이날 컨퍼런스의 주제는 ‘혼돈의 시대, 경계를 넘는 혼종’. ‘이름이 곧 장르’가 된 봉 감독에게 딱 맞는 주제였다. 그의 작품은 한 가지의 장르, 정서, 기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 ‘괴물’에선 전형적인 괴수 영화의 서사와 가족 드라마, 신랄한 사회 풍자를 함께 담았고, ‘기생충’에선 코미디와 스릴러, 공포물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장르뿐 아니다. 2017년 봉 감독은 국내에선 최초로 넷플릭스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 ‘옥자’를 연출하며 유통 플랫폼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유연한 행보를 보였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해 봉 감독은 “TV, 인터넷, 케이블, 스트리밍 등 영화를 위협하는 도전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그때마다 영화는 구시대의 산물인 것으로 취급됐다”며 “하지만 스토리텔링으로 관객을 매료시킨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7581943931535.jpg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SF 영화 '미키 17'. 13일 개막하는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스페셜 갈라 부문에 초청됐다. 이 장면에 나오는 두 미키는 AI의 도움을 빌어 만들어졌다고 봉 감독은 밝혔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최근 화두로 떠오른 AI(인공지능)에 대해서는 “흥분되기도, 두렵기도 한 존재”라고 했다. 그는 “영화 ‘미키 17’에서 한 화면에 두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나오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AI의 도움을 받았다”며 “기술이 어떻게 인간성을 위협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에서조차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는 “나도 아직 혼란 상태”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영화 마케팅을 위해 마케터, 배급자들이 항상 내 작품이 어떤 장르인지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한 마디로 대답하지 못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어 “(장르가 오가는) 이런 특징이 내 영화의 강점이기도 하다”며 “다음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덧붙였다.

K콘텐트의 성장이 다양한 문화와의 결합에서 나왔다는 점도 언급했다. 봉 감독은 “음악 분야의 경우, 인더스트리 전체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적극 흡수하는 개방된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든 스튜디오는 한국 회사가 아니다. 외국 회사가 자연스레 (한국 관련 콘텐트를) 만드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17581943933483.jpg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봉준호 감독(왼쪽)과 마크 톰슨 CNN CEO가 대담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날 봉 감독은 대담자인 톰슨 CEO와의 ‘케미스트리’를 뽐내며 청중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톰슨 CEO는 대담 초반부터 “괴물을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봉 감독은 나의 영웅”이라며 ‘팬심’을 드러냈다. 봉 감독은 “CNN 역시 가짜뉴스의 위협을 받지 않느냐”, “버니 샌더스와 펭귄이 춤추는 가짜 뉴스가 CNN의 로고를 달고 나오면 어쩌냐” 등 언론이 처한 위기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봉 감독이 “새로 만들 영화 속 뉴스 리포팅 장면에 CNN 로고를 쓰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톰슨 CEO가 즉석에서 “하겠다”고 수락하며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4,512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