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집주인 중개사라 믿었는데"…신림동 무더기 전세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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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전세살이를 하던 직장인 A씨(35)는 지난 4월 같은 건물 이웃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8월이 계약 만기였던 A씨는 곧바로 건물주 B씨(32)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돈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자신을 ‘○○부동산 중개사무소 이사’라고 소개했던 집주인이었기에 믿고 계약했는데, 알고 보니 건물 세입자 대부분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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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 모습. 뉴스1

1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관악경찰서에는 신림동 한 26세대짜리 다가구주택에서 보증금 미반환 피해를 봤다는 고소장이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 A씨를 비롯한 세입자들은 2022~2024년 각각 1억3000만~1억6000만원의 보증금을 내고 B씨와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피해 세대가 돌려받지 못했거나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증금은 총 2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중개보조원인데 공인중개사라 믿어" 

계약 당시 다수의 세입자는 집주인이 공인중개사라고 믿고 있었고, 최근에서야 B씨가 중개보조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피해자 A씨는 “2023년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서 만난 B씨가 ‘자기 건물이고, 본인이 중개업도 겸하고 있다. 내가 보증금도 1000만원 깎아 주겠다’고 방을 소개해서 믿고 계약했다”고 밝혔다. 공인중개사법상 중개보조원은 현장 안내나 서무 등 단순 업무 보조만 가능하고, 직접 부동산을 중개할 수는 없다.

피해자 측은 B씨가 새로운 세입자를 들일 때 계약서상 ‘선순위 임대차 보증금’을 축소했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한 피해자는 계약서를 쓸 당시 선순위 보증금이 12억원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계약했지만, 추후 피해자들이 직접 모여 취합한 결과 당시 선순위 보증금은 19억원이 쌓여 있다고 한다.

"전세 시세 하락해 보증금 못 돌려주는 것" 

특히 피해자 측은 B씨가 당초 전세사기의 의도를 가지고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수)’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22년 B씨가 건물을 인수한 뒤 이듬해 계약 만료가 도래한 세입자가 있었으나, 당시에도 “보증금을 돌려줄 돈이 전혀 없다”고 주장해서 부득이하게 재계약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B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세 시세가 하락해서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것”이라며 “일부 세대에는 계약금을 낮춰 재계약해 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수억원을 썼다”고 주장했다. 충분한 보증금 반환 자금 없이 부동산을 매입했다가, 전셋값이 매매가를 넘어서는 ‘역전세’가 발생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건물 경매로…세입자 보증금 축소 가능성 

현재 건물은 경매로 넘어간 상태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건물이 2, 3차례 유찰된 뒤 저가에 낙찰될 경우 근저당권을 가진 금융회사가 먼저 채권을 회수하기 때문에 세입자가 받을 보증금은 상당히 적어질 가능성이 크다. A씨 등 피해자는 “B씨가 대출금만으로 건물을 산 것도 문제지만, 중개보조원 신분을 속이고 선순위 보증금도 틀리게 설명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청년 1인 가구가 밀집하고, 신림동·봉천동 등 빌라촌이 형성된 관악구에서는 전세사기 피해가 끝없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중앙지법이 2019~2023년 관악구 일대에서 빌라 7채로 임대 사업을 하면서 총 46명에게 전세 보증금 60여억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의 전직 경찰관 이모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관악경찰서는 변호사, 법학 전공자, 경제범죄 수사관 등 전문성 있는 인원으로 구성된 전세사기 전담 집중수사팀을 통해 사건을 수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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