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본군 다룬 영화 첫날 600억 흥행…'혐일 마케팅'에 안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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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생체실험 부대를 다룬 중국 영화 '731' 포스터. 웨이보 캡처.
“국치를 잊지 말자! 역사를 기억하자!”
한 남성이 양손으로 오성홍기(五星紅旗)가 달린 깃대를 세차게 휘두르며 외쳤다. 이어 모인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따라 소리쳤다. 손에는 작은 플라스틱 오성홍기가 들려있었다. 중국의 한 영화관 내 풍경이다. 18일 개봉한 영화 ‘731’의 엔딩 크레딧이 막 올라간 뒤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자행했던 생체실험을 다룬 영화로 자오린산(趙林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자오는 12년에 걸쳐 영화를 준비했고 제작 과정에서 방대한 양의 사료를 참고해 철저히 고증했다고 밝혔다. 그는 상영회에서 “영화는 역사적 증거가 되고 극장은 정의의 법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감독의 바람처럼 영화는 흥행 가도를 달렸다. 19일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영화 ‘731’은 개봉 당일 11시간 만에 박스오피스 수익 3억 위안(약 585억 원)을 넘겼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엔드게임’을 뛰어넘은 역대 최고 기록이다. 개봉일은 중국이 국치일로 여기는 만주사변 발발일이기도 하다.

19일 중국 베이징시 한 영화관 대형스크린에서 영화 '731'의 예고편이 나오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이튿날에도 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은 이어졌다. 이날 기자가 찾은 베이징시 차오양구 한 영화관은 단체 관람객으로 오후 1시 30분 영화 관람석 121석이 전부 가득 찼다. 이곳에선 밤 10시까지 10~20분 간격으로 상영되는데 120~280석에 달하는 각 상영관이 대부분 매진이었다.
다른 영화관에선 입구부터 중국공산당 깃발을 든 중년 남녀 8명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들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차분히 극장 안으로 향했다. 한 대학생 관람객은 “영화를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영 매체들도 나서 홍보에 힘을 주고 있다. 환구시보는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 주제로 역사와 전쟁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고 차이나데일리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제작진의 결의와 헌신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영화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개봉했고 19일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11월엔 한국에서도 상영할 예정이다.

19일 중국 베이징시 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 '731'의 상영관이 대부분 매진됐다. 이도성 특파원.
‘731’이 불러일으킨 애국심과 반일감정은 최근 중국 영화계를 관통하는 흥행코드다. 1937년 발생한 난징대학살을 다룬 영화 ‘난징사진관’은 이날까지 30억 위안(약 5883억 원)에 육박하는 누적 흥행 수익을 거뒀다. 지난 7월 개봉한 뒤 상영일을 10월 24일까지 연장했다.
앞서 2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군 포로를 구하는 중국 어부들은 다룬 ‘둥지다오(東極島)’와 일제 항전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산허웨이정(山河爲證)’도 개봉했다. 올해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이어온 중국 정부의 기조에 발맞춘 셈이다.
다만 반일을 넘어 혐일로 치닫는 마케팅을 향한 우려도 나온다. 이미 여러 차례 일본인을 향한 범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엔 장쑤성 쑤저우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던 한 일본인 여성이 돌팔매질을 당했다. 또 지난해 9월 18일엔 광둥성 선전에서 중국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등굣길이던 일본인 초등학생이 숨졌다.
중국 내 일본인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일본인 학교들은 이날 안전상 이유로 휴교하거나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다. 주중일본대사관은 지난 11일 현지 교민들에게 외출 시 주의사항을 공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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