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헬창' 근육과 다르다…팔씨름 세계 3위, 55세 공무원 반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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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경남 김해시 한 헬스장에서 기자에게 팔씨름 기술을 선보이는 서상진(55)씨 모습. 서씨는 김해시청 실무관으로, 지난달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23회 세계팔씨름대회에 출전해 한국인 최초로 그랜드마스터(50대) 70㎏급 오른팔 부문 3위를 기록했다. 안대훈 기자
풍선마냥 부풀리기에 급급한 소위 ‘헬창’ 근육과 달랐다. 멋이 아닌 힘이 느껴졌다. 바늘로 찌르면 바늘이 부러질 듯한 어깨 삼각근부터 돌덩이처럼 투박한 이두·삼두박근, 힘줄이 툭 튀어나온 팔뚝 전완근으로 이어지는 오른팔은 마치 마블(Marvel) 히어로 ‘윈터 솔져’의 금속 기계 팔과 같았다. 오직 전투를 위한 무기. 지난달 25일 경남 김해시 한 헬스장에서 만난 서상진(55)씨의 첫인상이다. 서씨는 “단백질 보충제 한 번 안 먹은, 순수 운동으로 단련한 근육”이라 말했다.
팔씨름으로 ‘한국인 최초’ 수식어 붙다
오른팔이 주무기인 서씨는 팔씨름 선수다. 그의 기록엔 ‘한국인 최초’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지난달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23회 세계팔씨름대회(WAF)에서 대한팔씨름연맹(KAF) 한국 대표로 출전, 한국인 최초로 그랜드마스터(50대) 70㎏급 오른팔 부문 3위를 기록했다. 앞서 5월 아시아팔씨름대회 마스터(40대)·그랜드마스터 70㎏급에서 동시에 우승, 한국인 최초로 이 대회 2관왕을 했다.

지난달 25일 경남 김해시 한 헬스장에서 팔씨름 훈련 중인 서상진(55)씨 모습. 서씨는 김해시청 실무관으로, 지난달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23회 세계팔씨름대회에 출전해 한국인 최초로 그랜드마스터(50대) 70㎏급 오른팔 부문 3위를 기록했다. 안대훈 기자

팔씨름 선수로 활동 중인 경남 김해시청 공원과 실무관인 서상진(55)씨의 손에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다. 안대훈 기자
운 좋게 거둔 성적이 아니다. 숱한 강자를 꺾고, 또 꺾였던 서씨 손엔 고된 훈련의 흔적이 역력했다. 상대 손을 감아쥔 엄지와 검지 사이는 굳은살로 불룩했다. 손바닥도 징 박힌 장갑처럼 굳은살이 투성이었다. 매일 살이 쓸리도록 굵은 밧줄을 잡아당긴 결과다. 양 끝엔 30㎏씩 총 60㎏의 무게추가 달린 밧줄이었다. 때론 100㎏까지 증량했다. 팔씨름 자세로, 이 무게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팔씨름에 진심인 서씨는 훈련 기구도 직접 고안했다. 손수 소나무를 깎아 만든 손잡이다. ‘쿠비(일어·首)’란 이름까지 붙였다. 서씨는 “최고가 되자는 의미”라며 “쿠비를 쓰면 탑롤(비틀기)과 훅(꺾기) 등 힘주는 각도가 다른 팔씨름 기술을 혼자서도 훈련할 수 있다”고 자평했다. 이어 “굵기가 제각각인 쿠비가 여러 개 있는데, 각각 다른 선수를 상대하는 효과를 낸다”고 했다.
‘팔씨름 강자’의 숨은 정체는?
서씨의 진짜 정체는 경남 김해시청 소속 실무관(공무직)이다. 2003년부터 시청에서 일했고, 여러 부서를 거치며 주차단속부터 꽃·수목 관리까지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시청 내에선 인기 스타다. 이번 세계 대회 3등 한 뒤 시청 내부 게시망엔 “한국을 빛낸 위풍당당 팔씨름왕”, “불가리아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자랑스럽다”, “대단하고 너무 멋지다”는 축하글이 쇄도했다.

경남 김해시청 공원과 실무관인 서상진(55)씨가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서씨는 지난달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23회 세계팔씨름대회에 출전해 한국인 최초로 그랜드마스터(50대) 70㎏급 오른팔 부문 3위를 기록한 팔씨름 선수다. 사진 서상진씨
이런 서씨가 팔씨름계에 입문한 과정은 남다르다. 긴 구레나룻의 ‘마초’적인 인상과 달리, 서씨는 한때 고시생이었다고 한다. 1996년 대학 졸업 후 환경직 5급(기술고시 환경직)을 준비했다. 성적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을 거의 내본 적 없을 만큼 대학 성적도 우수했고, 대기환경기사 등 환경 분야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2~3년 만에 고시를 접었다.
서씨는 “성룡, 이소룡, 실베스타 스탤론을 동경하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며 “공부를 해야 하는데 몸이 근질근질해 도저히 못 참겠는 거야”라고 회상했다. 특히 서씨는 실베스타 스탤론이 각각 복싱·팔씨름 선수 역할로 출연한 영화 ‘록키’와 ‘오버 더 톱’을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난달 25일 경남 김해시 한 헬스장에서 팔씨름 훈련 중인 서상진(55)씨 모습. 서씨 손에 잡힌 '쿠비'란 이름의 팔씨름 훈련용 손잡이는 서씨가 직접 개발한 운동 기구다. 서씨는 김해시청 실무관으로, 지난달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23회 세계팔씨름대회에 출전해 한국인 최초로 그랜드마스터(50대) 70㎏급 오른팔 부문 3위를 기록했다. 안대훈 기자
실베스타 스탤론 동경…고시→복싱→팔씨름까지
실제 서씨는 김해시립복싱체육관에서 복싱 선수로도 활동했다. 2003년 MBC 신인왕전에선 3위를 기록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선수로 활동하기 쉽지 않은 연령이었다. 서씨는 “2년 뒤(2005년) 신인왕전 우승을 노리고 또 나가려 했는데, 33세 나이 제한이 걸려 참가하지 못했다”며 “복싱 이어 관심이 컸던 팔씨름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씨는 2007년 MBC 설날 팔씨름 대회를 시작으로 팔씨름 선수로 활동했다. 37세의 늦깎이였다. 하지만 타고난 힘과 열정으로, 지금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생 땐 몸무게가 55㎏으로 굉장히 말랐는데도 학교에서 팔씨름은 제일 잘했다”며 “지금도 힘으론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술을 뛰어넘는 힘”을 강조했다.

지난달 25일 경남 김해시 한 헬스장에서 팔씨름 훈련 전, '맨몸 운동 끝판왕'이라 불리는 '플란체' 동작으로 몸을 풀고 있는 서상진(55)씨 모습. 서씨는 김해시청 실무관으로, 지난달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23회 세계팔씨름대회에 출전해 한국인 최초로 그랜드마스터(50대) 70㎏급 오른팔 부문 3위를 기록했다. 안대훈 기자
“내년엔 세계 대회 우승이 목표”
서씨는 내년에 열릴 아시아·세계 팔씨름 대회도 출전할 계획이다. ‘그랜드 마스터’뿐만 아니라, 나이 구별 없이 맞붙는 ‘시니어’ 부문 우승을 노린다. 지난달 세계 대회에서 가능성은 확인했다.
서씨는 “앞서 5년간 속을 썩인 어깨 부상이 올해 초 나아진 뒤, 곧바로 출전한 대회여서 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도 “죽어라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서씨는 “팔씨름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길 바란다. 올림픽에서 우승해 메달을 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팔씨름 선수로 활동하는 경남 김해시청 공원과 실무관 서상진(55)씨 자택에 그간 팔씨름 대회에서 수상한 메달과 직접 만든 팔씨름 훈련용 손잡이 등이 진열돼 있다. 사진 서상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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