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김홍도 그림 속 '개상' 실제로 보며 농경문화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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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이용하여 인간 생활에 필요한 식물을 가꾸거나, 유용한 동물을 기르는 산업을 농업(農業)이라 하죠. 농업은 인류 문명의 기초가 되는 1차 산업으로, 인류의 생활양식에 미친 영향이 커요. 농사가 발달하면서 마을 단위의 거주지가 생겨났고, 정착이 가능해지면서 주거·의복·식문화 등 인류의 일상 전반에 큰 변화가 발생했으며, 두레·품앗이 등 공동체 문화도 발달했죠. 농업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와 관련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로봇기술·가상현실(VR) 등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중요한 산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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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로아 학생모델(왼쪽)·조현하 학생기자가 농업박물관을 찾아 풍속화 속 조선시대 농경사회의 모습을 살폈다.

그 시대의 생활양식과 풍습을 그린 그림을 풍속화(風俗畫)라 하는데요. 농업을 경제 기반으로 형성된 농경문화가 사회의 근간을 이뤘던 민중들의 삶을 조선시대 풍속화를 중심으로 들여다보는 특별전시 '홍도야, 놀자!'가 서울시 중구에 있는 농업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어요. 김로아 학생모델과 조현하 학생기자가 편수지 농업박물관 선임학예사와 함께 풍속화에 담긴 과거 우리 농업의 모습을 알아보기로 했죠.

농업박물관은 농업협동조합(농협)의 정신과 농업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고 농경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1987년 11월 국내 최초로 설립된 농업사 전문 박물관이에요. 서울시 한복판에 위치해 도심 속 농경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인데요. 농업의 역사를 소개하고 다양한 농경 관련 유물 전시, 농경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을 통해 전통 농경문화를 알리는 데에 앞장서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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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길쌈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그린 김홍도의 '길쌈'. 날실을 감은 틀인 도투마리가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안에는 김홍도·김학수·김득신 등 여러 풍속화가들의 작품이 각종 농기구와 함께 전시돼 있었죠. 현하 학생기자가 "전시의 기획 의도"를 궁금해했는데요. "'홍도야, 놀자!'는 옛 풍속화 속에 그려진 각종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살펴보고, 선조들의 생활상과 전통 풍습, 농사 방법 등을 알아보고자 기획했어요. 다양한 풍속화 속에 드러난 농경문화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농업과 함께 삶을 이어나간 점을 조명하여 농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첨단 과학 기술과 농업 기술이 만나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는 스마트팜이 등장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농업은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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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 앞다리 너머의 채머리 위에 얹어 두고 날실을 풀어 가면서 베를 짤 때 쓰는 도투마리.

조선시대 계절별 농사 과정이 풍속화에 어떻게 묘사됐는지 살펴볼까요. 가장 먼저 만나볼 작품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단원 풍속도첩』에 있는 풍속화예요. 『단원 풍속도첩』은 총 25점의 풍속화를 모은 화첩으로, 각 계층의 생업 장면과 놀이 등 생활의 이모저모가 잘 나타나 있죠.

봄은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첫 계절로 입춘(立春·2월 4일경)부터 입하(立夏·5월 6일경) 즈음까지예요. 봄에 행해지는 농사 활동으로는 겨우내 굳은 땅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소를 이용해 쟁기로 밭을 가는 논밭 갈이, 곡식·채소의 씨를 논·밭에 뿌리는 파종, 벼의 모종을 키우는 모판 만들기 등이 있죠. 『단원 풍속도첩』 속 '논갈이'는 앞에서는 한 쌍의 소가 쟁기를 끌고 뒤에서는 두 명의 농군이 쇠스랑으로 흙을 고르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로, 논밭 갈이를 묘사하고 있어요. 대각으로 솟구치고 있는 소나, 쟁기를 잡은 농부의 몸짓 등이 농사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죠. 현대에는 쟁기가 하던 일을 트랙터가 완전히 대체했어요. 한 마지기(약 200평)의 논밭을 가는 데 하루 걸리던 작업이 지금은 트랙터로 10분이면 가능하죠. 또 모를 하나하나 옮겨 심던 모판은 모를 내는 데에 쓰는 기계인 이앙기가 대체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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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의 '농가월령도' 중 5월. 타작 도구인 도리깨와 갈퀴로 보리를 타작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작물들이 한창 자라는 여름 농사 기간은 소만(小滿·5월 21일경)부터 대서(大暑·7월 23일경)까지 봐요. 자라난 작물의 잡초를 제거하는 김매기, 모판에 심었던 모를 논에 옮겨 심는 모내기 등이 주요 농사 활동이죠. 모내기할 때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해서 두레나 품앗이를 통해 마을이 협력하곤 했어요.

조선시대 농민들은 집집마다 1년 동안 매달 해야 할 일이나 농촌의 모습 등을 그림 자료와 노래 가사로 남겨두었는데, 이를 '농가월령도' 혹은 '농가월령가'라고 불러요. 혜촌 김학수(1919~2009)의 '농가월령도'는 조선시대 문인 정학유의 '농가월령가'를 기초로 그린 풍속화로, 1월부터 12월까지의 농촌 풍경이 담겼죠. "5월에 해당하는 '농가월령도'에는 타작 도구인 도리깨와 갈퀴를 이용하여 보리를 타작하는 농부들, 지게에 보리를 비롯한 수확한 곡물을 가득 실어 이동하는 모습, 그리고 호미와 쟁기질을 통하여 김매기 등을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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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얹어 사람이 등에 지는 운반 기구인 지게. 과거 수레와 함께 대표적인 짐을 운반하는 도구였다.

과거 호미·낫 등으로 하던 김매기는 현대에는 제초제 살포기, 멀칭(비닐 덮기) 기계 등을 통해 화학처리나 기계적 제거를 해요. 과거에는 김매기가 여름철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였지만, 현대에는 훨씬 수월해졌죠. 또 짐을 운반하던 지게나 수레는 현대에는 경운기나 트럭으로 대체됐어요. 긴 장대 끝에 서너 개의 회초리를 매단 형태인 도리깨는 휘둘러서 곡식의 낟알을 떠는 데 쓰이는 재래식 농기구 중 하나입니다. 현대에는 벼 수확부터 탈곡, 이물질 분리, 자루에 담기까지 자동 처리하는 기계인 콤바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요. 반면 한쪽 끝을 얇게 다듬은 대쪽이나 철사를 부챗살 모양으로 엮어 만든 갈퀴는 검불이나 곡식을 긁어모으는 데 쓰는 기구인데, 오늘날에도 농가에서 자주 사용하죠.

로아 학생모델이 "조선시대나 근대에 많이 사용한 농기구 중에 오늘날에도 자주 쓰이는 농기구들이 있나요"라고 궁금해했어요. "과거에는 농부들이 직접 농사일을 진행했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트랙터나 콤바인 등의 기계가 대신하여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호미나 낫 등은 작은 논밭을 가꿀 때 사용하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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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시작하는 봄에 하는 논밭 갈이를 그린 김홍도의 '논갈이'를 살펴본 김로아 학생모델.

이제 가을 농촌의 풍경을 그린 풍속화를 살펴볼까요. 입추(立秋·8월 8일경)부터 상강(霜降·10월 24일경)까지 진행되는 가을의 농사는 낫을 이용해 벼·콩·조·수수·참깨 등 대부분의 작물을 수확하는 추수, 추수를 끝낸 작물의 낱알을 도리깨·개상 등을 이용해 줄기에서 분리하는 탈곡 등이 있어요. 『단원 풍속도첩』 속 '벼타작'은 추수 시기에 벼를 타작하는 데 여념이 없는 일꾼들의 모습을 그렸죠. 이 풍속화 속에는 탈곡 도구인 개상이 등장합니다. 개상은 나란히 놓은 통나무 두 개를 나무막대로 고정한 형태인데, 볏단이나 보릿단을 내리쳐 낟알을 떨어낼 때 쓰는 도구예요. 현대에는 탈곡기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죠.

겨울은 입동(立冬·11월 7일경)부터 대한(大寒·1월 21일경)까지로, 돌아오는 봄의 농사를 위해 쟁기 호미 낫 등을 농기구를 손질하는 계절이에요. 농한기이기 때문에 볏짚을 이용해 짚신·농기구·생활용품을 만들고, 물레로 실을 뽑기도 했죠. 『단원 풍속도첩』 중 '길쌈'은 베틀에서 길쌈하는 아낙네를 바라보는 아이와 아이를 업고서 이를 바라보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그리고 화면 위쪽에 열심히 실을 뽑아내는 땀에 젖은 아낙네의 진솔한 생활미가 깃들어 있는 작품이에요. 길쌈이란 베틀을 이용해 실로 삼베·무명·명주 등 옷감을 짜는 행위를 뜻하는데, 베를 짜기 위해 날실을 감아 놓은 틀을 도투마리라 하죠. 베틀 앞다리 너머의 채머리 위에 도투마리를 얹어 두고 날실을 풀어가면서 옷감을 짜는 겁니다. 그림'길쌈' 옆에는 실제 도투마리가 전시돼, 이를 처음 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살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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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나 바닥자리 등의 자리를 짜는 도구인 자리틀. 아래 매달린 돌들은 세로축을 고정할 때 쓰는 추다.

이렇게 짚신을 만들고, 물레를 돌리고, 자리를 짜는 등 농사의 수확물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모습은 조선시대 화가 김득신(1754~1822)의 '수하일가도'나 '파적도'에도 등장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김홍도·김학수·김득신 등 여러 풍속화가들의 작품에 나타난 조선시대 농부들의 모습을 보며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수확을 하는 장면에서 등장한 도리깨·쟁기·호미·낫 등은 단순한 농사도구가 아니라, 농경문화의 흔적이자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현대에는 자동화된 농사 기구들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럼에도 옛날의 농기구들을 전시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동화된 농기구가 등장하기 전에는 농사와 품앗이를 통해 이웃들과 단합과 결속을 맺어 마을의 조직생활을 꾸려 나가고 협동심을 길렀죠.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농기구가 기계화되어 필요 노동력 감소, 대량 생산 가능, 시간 단축 등의 고효율성을 갖춘 농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농촌 사회에서 느낄 수 있던 정성이나 이웃 간의 협동심, 단합 등은 퇴색되어 가고 있어요. 또한 농업에 대한 관심도 많이 사라지고 있죠.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는 유구한 역사와 농업인들의 고귀한 가치가 담겨 있는 소중한 농경문화를 잊지 않고 그 가치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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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에는 다양한 일상이 드러난다. 신윤복의 '임하투호'에 등장하는 투호놀이를 체험한 조현하 학생기자.

동행취재=김로아(경기도 위례초 4) 학생모델·조현하(서울 성내초 6) 학생기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농업박물관 특별전 '홍도야, 놀자!'를 관람했어요. 김홍도의 '벼타작'이라는 풍속화를 보며, 곡식을 타작하는 머슴들과 감독관인 듯한 양반이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 조선시대 농경 문화와 계급 사회가 잘 표현된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살아있는 듯한 그림을 보니 마치 그 당시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죠. 전시된 작품 중 일부는 원본이 우리나라가 아닌 독일 함부르크 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독일 여행을 하게 된다면 꼭 관람하고 싶어요.

김로아(경기도 위례초 4) 학생모델

서울 서대문 농업박물관에서 열린 '홍도야, 놀자!' 전시를 취재했어요. 이 전시는 조선시대를 묘사한 풍속화 속에 있는 옛날 농사 도구와 조선 시대 농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줘서 매우 흥미로웠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농가월령도'로, 조선시대 농민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었고 어떤 풍속이 있었는지를 달마다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림 속 농기구들을 보며, 평소에는 용도를 몰랐던 농기구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게 되어 그 의미가 더 깊었어요. 작은 도구 하나에도 지역의 특성과 농민들의 생활이 담겨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조현하(서울 성내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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