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겁난다" 살벌한 외식물가…반세기 '엥겔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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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까지만 해도 ‘엥겔계수(Engel’s coefficient)’는 삶의 질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로 꼽혔다. 엥겔계수는 독일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이 1857년 발표한 저서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가계 총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식비 비중이 줄어드는 ‘엥겔의 법칙(Engel’s law)’에 따라, 계수가 낮아질수록 생활 수준의 향상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한국의 엥겔계수가 꾸준히 하강 곡선을 그리던 시기에는 “그만큼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는 만족감이 사회 전반에 퍼지기도 했다.
한국은 1960년대 엥겔계수가 50~60%를 넘으며 ‘먹고사는 것’이 소비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1967년 ‘미니스커트 돌풍’이 사회 전반을 휩쓸면서 의류·신발 등 소비 지출이 급증했다. 1971년엔 의류·신발 지출 비중이 12.1%까지 올라갔다. 미니스커트 열풍이 패션 소비시대를 연 것이다.

미니스커트 열품을 이끈 가수 윤복희. 중앙포토
대신 식료품비 비중은 40%대로 내려앉으며 소비구조 변화의 전환점이 됐다. 식료품비 내역도 달라졌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곡류와 식빵 비중이 60%가 넘었다. 하지만 이후 육류 소비가 늘고 가공식품·외식 문화가 확산하면서 1980년대에는 엥겔계수가 30%대로 떨어졌다. 의류·신발 지출 비중도 10%대에서 7~8%로 하락했다. 그 대신 교양·오락비와 교통·통신비, 가구 집기·주거용품비, 주거비 비중이 높아졌다. 먹고살기 급급했던 데서 삶의 질을 따지는 풍요의 시대로 옮겨간 것이다.
1990년대엔 엥겔계수가 20%대까지 하락했다. 대신 교양·오락비와 교통·통신비 부담이 급증했다. ‘삐삐’에 이어 휴대전화와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탓에 통신비 지출이 불어난 것이다. 특히 온라인 게임이 보급된 뒤 인터넷 중독에 빠진 청소년 때문에 전화비 청구서를 놓고 게임업체와 학부모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마이카 시대’가 되면서 교통비 지출도 부쩍 늘었다. 2007년 근로자가구의 소비지출 중 교통·통신비 비중은 17.2%로 식료품비 비중(25.2%)과의 차이를 바짝 좁혔다. 1990년대 들어 꾸준히 늘던 교육비 지출도 1995년 10%대로 올라섰다.

박경민 기자
다만 엥겔계수는 어디까지나 통계 지표다. 어떤 항목을 포함하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국가데이터처가 엥겔계수를 공식 산출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도시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가계지출은 495만7935원, 세금·이자·보험료 등을 제외한 소비지출은 360만6349원이었다. 전자는 가게에서 나간 돈 전체, 후자는 실제 생활에 쓰인 지출만을 의미한다. 분모를 가계지출 전체로 설정하느냐, 소비지출만 놓고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식료품비 정의에 따라서도 계수는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 방식은 가정 내 식재료 지출만을 반영하지만, 최근엔 외식비까지 포함한 수정 엥겔계수가 널리 쓰인다. 지난해 기준,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 비중만 계산하면 14.3%, 외식비(식사비)까지 합치면 28.8%로 껑충 뛴다. 식료품비만 반영할 경우 한국의 엥겔계수는 1996년 처음 10%대(19.8%)로 진입한 뒤 꾸준히 감소했다. 반면 식료품비에 외식비를 포함할 경우 1999년 처음 20%대(29.9%)로 내려왔다. 2010년 26.4%까지 내려갔다가 2022년 29.0%를 기록하는 등 최근 다시 소폭 오름세다.
반등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이상기후·전염병·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 불안으로 농축산물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 크다. 이른바 ‘기후플레이션(기후위기+인플레이션)’이다. 기후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식품 원자재 가격이 구조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이 삶의 질 지표에도 반영되는 것이다.
외식비가 급등한 것도 이유다. 지난해 기준 전체 식료품비와 식사비를 합한 금액에서 식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처음으로 50%(50.2%)를 넘었다. 건강식품과 프리미엄 식재료, 외식 서비스 선호 확산 등으로 식비 범주 자체가 넓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역시 고령화와 물가 상승으로 엥겔계수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엥겔계수(외식비를 포함)는 28.3%로, 1981년(28.8%) 이후 4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광복 80년 센서스 100년 “숫자는 기억한다”
한국에서 통계 조사를 시작한 건 1925년 인구총조사(센서스)부터다. 한국의 센서스에는 100년의 역사가 담겼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총조사는 1949년에 실시했다. 한국통계진흥원이 지난 2008년 발간한 책 『대한민국을 즐겨라-통계로 본 한국 60년』과 국가데이터처 통계 등을 통해 광복 이후 80년간 한국의 발전사를 조명해본다.
〈목차〉
① GDP는 5.3만배 껑충, 문맹률은 78%→0%…광복 이후 대한민국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9737
② "불임시술하면 승진" "셋째 휴직 불가"…'저출생 부메랑' 된 장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2278
③1951년 한해 390% 오른 '살인물가'...1982년 이후 두 자릿수 상승률 사라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6053
④'소득 증가하면 식비 준다'는 엥겔법칙 거스르는 '기후플레이션'
일본 역시 기후변화에 따른 농산물 가격 불안과 외식비 상승, 고령화로 인한 식비 비중 확대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2월 아사히신문은 “소비자물가지수는 쌀류가 전년보다 27.7% 상승했고, 이상기후로 성장이 저조했던 야채도 오르고, 양배추와 양파도 20%를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엥겔계수는 한때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빈곤 지표’였지만, 이제는 기후위기·물가·소비 구조 변화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사회경제 신호’로 변하고 있다. 앞으로는 고령화와 맞물려 새로운 소비 패턴 속에서 다른 의미를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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