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오죽하면 "자식보다 나라가 낫다"…자식 용돈 못받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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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에 사는 박모(79)씨는 50대인 딸과 아들에게 따로 용돈을 받지 않는다. 딸은 미국에 살고 있고, 아들은 하던 사업이 기울어서 생활비를 줄 형편이 안된다. 남편과 사별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생활비가 빠듯해 최근 집을 줄여서 여윳돈을 마련했다. 용돈은 주민센터에서 하는 노인 일자리에 나가며 벌고 있다. 박씨는 “아들도 애가 둘인데 아직 1명은 학생이라 여전히 돈이 들어간다”며 “나까지 부담을 줄 순 없고, 아직 건강이 나쁘진 않아서 일하기는 괜찮다”고 말했다.
자녀 용돈으로 노후를 보내는 건 이제 옛말이다. 통계가 말해준다. 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4~6월(2분기) 65세 이상 고령층 가구(가구주 연령 기준)의 월평균 사적이전소득은 1년 전 25만6953원보다 5.5% 줄어든 24만2937원이다. 동기 기준 2021년 이후 최저치다. 2023년 29만9982원으로 30만원에 육박했지만, 지난해와 올해 2분기 연이어 감소하면서 4년래 가장 낮은 액수로 주저앉았다.

지난 7월 29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근처를 걷고 있는 시민 모습. 연합뉴스
사적이전소득은 가족이나 친인척, 민간단체, 타인이 대가 없이 준 돈을 뜻한다. 고령 가구의 경우 자녀로부터 받는 생활비ㆍ의료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1980년만 해도 60세 이상 가구의 주 소득원은 자녀 용돈 등 사적이전소득으로, 전체 소득의 75.6%를 차지했다. 하지만 ‘노인이 된 부모의 생계는 자식이 책임진다’는 의식이 점차 옅어지면서 이 비율은 1995년 56.6%, 2003년 31.4%로 내려갔다(한국노동연구원).
올 2분기엔 65세 이상 가구 기준 7.5%에 그쳤다. 청년층 취업난, 조기 은퇴와 맞물려 스스로 가계를 꾸려가기도 팍팍한 중년의 자녀 세대가 더는 부모 부양을 ‘의무’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생계급여에 이어 의료급여까지 단계적으로 부양의무자 제도(자녀 소득ㆍ자산에 따라 부모 지원 감축)를 폐지해 나가는 것도 이렇게 변화한 세태를 반영해서다.
‘자식 용돈’의 빈자리는 노인 스스로 번 돈(근로소득)과 각종 연금ㆍ복지급여ㆍ정부지원금(공적이전소득)이 채우고 있다. 올 2분기 65세 이상 가구의 소득에서도 근로소득(31.0%)과 공적이전소득(35.5%)이 차지하는 비중이 사적이전소득보다 훨씬 컸다.

지난달 11일 취업박람회를 찾은 구직자가 채용 게시대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요즘은 의학 발달로 고령에도 건강을 유지하다 보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은퇴 이후에도 ‘황혼의 노동’을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계청 집계 결과를 보면 올 8월 65세 이상의 고용률(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은 41.1%로, 10년 전인 2015년 30.4%에서 크게 올랐다.
여기에 ‘자식보다 나라가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령층 가구를 대상으로 한 정부 지원 늘고 있다. 65세 이상 가구의 월평균 공적이전소득은 2024년 2분기 2.8%(전년 대비) 증가한 데 올 2분기에도 4.2% 증가하며 115만2526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물론 그만큼 자녀 부양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정부의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식이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한다는 건 더는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개념으로 가고 있다”며 “‘연금 보릿고개’ 문제와 맞물려 고령 빈곤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이를 공공일자리ㆍ복지 지원 측면에서만 접근하지 말고 좀 더 생산적인 민간 고령 일자리 발굴에 정부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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