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럼프, 29일 이재명-30일 習 만난 뒤 바로 출국…APEC은 불참 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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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1일부터 이틀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방한해 1박 2일 일정을 소화한 뒤 귀국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의장국을 맡은 APEC 본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경주가 미·중 정상회담 무대로만 활용되는 데 그치지 않도록 막판까지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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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Oval Office)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 회담 중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8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6~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27~29일 일본을 방문해 새로 선출된 총리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이후 29일 오전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해 경주로 이동, 이재명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할 전망이다. 이어 이튿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미·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오후쯤 출국하는 일정이 유력하다.

앞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추진했지만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양측 모두 상대국 수도 방문에는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 일정이 예정돼 있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내년 APEC 의장국으로서 방한 명분이 있었던 만큼, 외교적 접점을 마련한 결과가 ‘경주 회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시 주석과 한국에서 회담할 것"이라며 방한 일정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현재 검토되는 일정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APEC 정상회의 본행사(오는 31일~다음 달 1일) 전에 마무리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시 주석과의 회담을 위한 ‘원포인트 일정’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한 일정이 무박 혹은 1박 2일로 확정된다면 일반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미국 대통령이 한·일을 연달아 방문할 때는 통상 일정의 균형을 고려하지만, 일본에서는 특별한 현안이 없음에도 2박 3일 머무는 반면 한국에서는 APEC이 열리는데 본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동맹 관계의 균형이 흔들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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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APEC 정상회의장인 경북 경주시 화백컨밴션센터에서 회의장과 국제미디어센터 등에 대한 시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뉴스1

트럼프 대통령은 본래 다자 협의보다 양자 회담을 선호하는 외교 스타일이다. 이번에도 자유무역 증진이라는 APEC의 본래 취지보다는 미·중 무역 갈등을 조정할 협상 계기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 측이 APEC 방한 일정을 예상보다 짧게 잡은 것 또한 수개월째 교착 상태인 한·미 관세 협상에서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주가 미·중 담판의 장소로만 쓰이게 된다면 APEC의 의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올해 APEC은 계엄·탄핵 국면 이후 한국이 처음으로 주최하는 다자 정상회의다. 정부는 ‘국제사회 복귀’를 선언하는 상징적 외교 무대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경제 협력, 인공지능(AI) 협력, 공급망 안정, 기후 대응 등 글로벌 의제를 주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행사 불참은 이런 구상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떠난 뒤 시 주석이 남아 APEC 본행사에 참석하면 자칫 이번 행사의 '주빈'(主賓)이 시 주석인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시 주석이 이를 계기로 반미 연대를 부각하려 한다면 한국은 외교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APEC 기간 미·중 정상을 잇달아 만나게 될 이 대통령은 미·중 간 균형을 유지하면서 실질적 외교 성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당초 정부는 시 주석에 대해서도 2014년 이후 11년 만의 국빈 방한을 추진했지만, 이 구상도 현재 불투명해진 분위기다. 최근 중국이 서울 신라호텔 대관을 취소한 것 역시 시 주석의 방한 일정 조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시 주석의 국빈 방한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내세울 만한 성과가 있어야 가능한데, 현재 양국 간 합의할 사안이 많지 않다”며 “중국은 북한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 오는 20~23일 열리는 4중전회 등 국내 정치 일정도 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협의 상황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국빈 방한이라면 이미 일정이 확정돼야 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꼭 서울에서만 국빈 일정을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미·중 정상회담 일정도 여전히 유동적인 만큼 마지막까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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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쇼전쟁승리(전승절) 80돌(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사실을 4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노동신문=뉴스1

게다가 오는 10일 평양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나란히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달 초 베이징 전승절 행사에 이어 북·중·러 삼각 공조가 다시 부각될 것으로 보여 외교 정세는 한층 복잡해졌다.

한편 이번 APEC을 계기로 판문점 등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접촉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예상보다 짧아지면서 실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 상태다. 강준영 교수는 “경주 APEC을 계기로 미·중 간 중재자 역할을 하거나 한반도 문제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한국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여 정교한 대응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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