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휴대폰 훔쳤었다" "다들 간식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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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북본부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금액 1050원으로 재판까지 간 '초코파이 절도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노조 탄압” 반발
피해 금액 1050원으로 재판까지 간 ‘초코파이 절도 사건’에 대해 전주지검이 추석 연휴가 끝나는 대로 검찰시민위원회를 열어 각계각층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오는 30일 이 사건 항소심 2차 공판을 앞두고 시민 눈높이에서 재판부에 선고유예를 요청하는 등 피고인을 선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다시 살펴보기 위해서다.
2010년 도입된 검찰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는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에 대해 검사의 공소 제기, 불기소 처분 등의 적정성을 심의하는 제도다. 시민위 결정에 구속력은 없지만, 검찰은 수사·공판 단계에 중요 자료로 참고한다.
8일 전주지검에 따르면 물류회사 협력업체에서 보안 업무를 맡고 있는 A씨(41)는 지난해 1월 18일 오전 4시 6분쯤 전북 완주군 물류회사 사무실 냉장고에서 초코파이(450원)와 커스터드(600원)를 꺼내 먹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만원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에서 유무죄를 다투고 있다. 이 사건을 두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조 탄압”이란 반발이 거세다. 검찰 안팎에선 A씨의 과거 동종 전과가 시민위 판단을 좌우할 쟁점으로 꼽힌다.

초코파이 참고 사진. 중앙포토
클럽서 휴대폰 절도…“300만원에 합의” 선고유예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1월 11일 오후 10시 48분쯤 전주시 완산구 한 클럽에서 30대 여성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140만원짜리 휴대전화 한 개를 몰래 가져간 혐의(절도)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주지법은 그해 9월 19일 A씨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유죄가 인정되지만, 범죄가 가볍고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일 때 형 선고를 일정 기간 미루는 제도다. 당시 재판부는 A씨가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훔친 휴대폰 가격의 2배가 넘는 300만원을 피해자에게 주고 합의한 점, 동종 전과나 벌금형을 넘는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
A씨는 이 사건 전후로 만취 상태에서 경찰 승합차를 자기 차로 착각해 20m가량 운전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을 낸 적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검찰은 A씨에게 ‘자동차 등 사용절도’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했다. 자동차 등 사용절도는 타인의 자동차·선박·항공기·오토바이 등을 권리자 동의 없이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영구적으로 소유하려는 의도로 타인의 물건을 가져가는 절도죄와 구분해 별도로 처벌하는 범죄다.
A씨는 과거 ‘휴대폰 절도 사건’ 때와 달리 ‘초코파이 절도 사건’에 대해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평소 탁송 기사들로부터 ‘냉장고에 간식이 있으니 먹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다. 피해자와의 합의도 불발됐다. A씨를 고소한 물류회사 관계자는 “보안을 책임져야 할 직원이 근무지를 벗어나 남의 사무실에 들어와 남의 물건에 손댄 게 정당하냐”며 처벌을 고집하고 있다. 이에 전주지검은 벌금 50만원에 약식 기소(공판을 열지 않고 법원에 서면 심리를 청구하는 절차)했지만, A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현행 경비업법상 보안 담당자가 절도죄가 인정되면 회사에서 해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북 전주시 만성동 전주지방법원 청사. 연합뉴스
노조 “동료 수십명 10년 넘게 탕비실 이용”
그러나 1심을 맡은 전주지법 형사6단독 김현지 판사는 지난 5월 “단순한 관행만으로 허락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달 18일 전주지법 제2형사부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재판장인 김도형 부장판사는 “각박한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면서도 “절도 혐의가 성립되는지 따져보겠다”고 했다. A씨는 변호사 비용으로만 1000만원 넘게 썼다고 한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지난달 30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애초 절도가 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촉구했다. A씨가 속한 노조 측은 “같은 보안 업무를 보는 재직자 중 절반이 넘는 수십 명이 ‘해당 물류업체의 양해를 받고 10년 넘게 탕비실 간식을 드문드문 이용해 왔다’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했지만, 1심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반 절도로 판단해 당사자는 파렴치한 좀도둑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건 발생 초기 A씨와 고소인 간 대화 녹취를 근거로 댔다. 녹취엔 ‘주의 조치로 끝내려 했는데 사건이 커져 어쩔 수 없었다’는 물류회사 관계자의 발언과 A씨 이전에 다른 보안 근무자 여럿도 사무실 폐쇄회로(CC)TV에 적발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도 A씨만 콕 집어 신고한 것은 원청 회사가 노조를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 신대경 전주지검장은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사건도 사건인데, 사건 이면에 있는 사정에 대해 관심이 많아 들여다볼 생각”이라며 “현재 항소심 중이라 공소 취소도 안 돼 결심 단계에서 법원에 구형할 때 상식선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대경 전주지검장이 지난달 22일 전주지검 중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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