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예고된 재앙" 佛총리 또 사임…도마 위 오른 마크롱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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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 AFP= 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취임 27일 만에 전격 사임하면서 프랑스 정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총리의 사임은 새 내각이 발표된 지 불과 14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현지 일간 르몽드는 “현대 프랑스 역사상 최단 재임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외신들은 “질질 끌었던 엉터리 연극”(벨기에 르수아르), “예고된 재앙”(미국 뉴욕타임스), “마크롱에게 최후의 일격”(영국 텔레그래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레임덕”(영국 더타임스), “코너 몰린 마크롱”(르몽드) 등 혹평을 쏟아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결국 프랑스를 극심한 불안정 시기로 몰고 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에 있다는 얘기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8년 동안 7명의 총리를 교체하며 1958년 제 5공화국 출범 이후 최다 기록을 세웠다. 특히 최근 15개월 사이 총리가 4명이나 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다.

잇단 교체 배경엔 제 5공화국의 통치 구조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마크롱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 남용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적했다. 여당 르네상스당의 가브리엘 아탈 대표조차 “대통령이 의회를 통제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프랑스 헌법학자인 벤자맹 모렐 파리 판테옹아사스대 교수는 “전체 의석의 3분의 1만 확보한 채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어떤 민주 체제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그 동맹 세력은 557석(전체 의석) 중 161석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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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3일(현지시간) 당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오른쪽) 프랑스 국방부 장관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파리에서 군 지도자들에게 한 대통령 연설을 마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 롤모델로 불리는 샤를 드골 전 대통령과 정치 환경이 다르다고 꼬집었다. WSJ는 “드골은 다수당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체제를 설계했지만, 마크롱은 다수당 없이 그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했다. 드골 전 대통령이 주도한 프랑스 제 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같은 정당일 때는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대통령 권한이 사실상 무력화돼 ‘동거 정부’가 출현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동거 정부 출현을 막고자 대통령과 하원 임기를 5년으로 맞추고 대선 직후 총선을 실시하도록 조정하는 개헌을 2000년에 단행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대선을 통해 재선에 성공했지만, 정작 여당은 대선 직후의 총선에서 견제 심리를 벗지 못하고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2024년 하원 해산 뒤 실시된 재선거에서도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이 1위, 극우 국민연합(RN)이 3위를 차지하며 어떤 세력도 과반을 얻지 못했다. 그 결과 이런 극도의 정치적 교착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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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여권의 초대 총리 에두아르 필립 전 총리가 지난해 9월 12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항구 도시 르아브르의 제2차 세계대전 해방 8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치권 역시 각자의 셈법에 몰두해 타협을 거부하고 있어 악화하는 양상이다. 르코르뉘는 당시 사임 연설에서 “모든 정당이 정파적 욕심(appétits partisans)에 매몰돼 타협을 거부했다”며 내년도 예산안 협상 실패를 사퇴 이유로 들기까지 했다. 실제 우파 공화당(LR)의 브뤼노 르타이오 대표는 “공화당이 진정한 파트너로 대우받는 동거정부가 돼야 협조할 것”이라며 친마크롱 내각을 거부했다. 사회당(PS), 공산당(PCF) 등 좌파 진영은 좌파 총리 임명을 압박하고, 급진 좌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는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초대 총리를 지낸 에두아르 필립 전 총리조차 “국가의 붕괴”라며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대선 선언과 사임을 촉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적 교착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르코르뉘에게 오는 8일 저녁까지 최종 협상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하며, 실패 시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사실상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라고 르몽드는 분석했다.

프랑스가 극좌와 극우의 틈바구니에서 재정 위기까지 맞물리면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16%에 달하며, 공공적자는 5.8%에 육박한 상황이다. 지난달 신용평가사 피치는 “높은 부채 비율과 정치적 분열”을 이유로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췄다.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성장 손실은 올해 말까지 150억 유로(약 24조 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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