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U도 관세 장벽…트럼프가 ‘트리거’ 된 보호무역, 세계 ‘트렌드’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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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 회동 중 손가락으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고율 관세 조치가 전 세계 통상 질서를 흔드는 ‘트리거(기폭제)’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관세 장벽 강화에 나서면서,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이 일시적 현상을 넘어 ‘세계적 트렌드’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를 대체하는 저율관세할당(TRQ·Tariff Rate Quota) 제도 초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안은 무관세 수입 쿼터를 연간 3053만t에서 1830만t으로 47% 줄이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관세율을 25%에서 50%로 상향하는 것이 핵심이다.

EU의 이번 결정은 겉으로는 ‘역내 산업 보호’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50% 철강·알루미늄 관세 인상으로 촉발된 수출 우회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대응책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50%로 인상하면서 아시아와 중동산 철강이 미국 대신 유럽으로 몰릴 가능성이 커졌고, EU는 역내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장벽을 높인 셈이다. EU의 철강 산업 가동률은 현재 67% 수준에 머문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이번 EU의 조치는 철강산업의 가동률 하락과 수입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 보호 수단이자 향후 미국과 철강 협상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EU도 철강 수출품에 대해 미국의 50% 품목 관세를 적용받지만, EU·미국 무역합의 공동성명에는 다른 나라와 달리 TRQ 도입 가능성이 명시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트럼프 트리거’에 따른 새로운 통상 환경의 신호로 본다. 전 세계 통상 질서의 방향이 ‘자유무역’에서 ‘전략적 보호무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상대가 장벽을 세우면 똑같이 세워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현실주의가 국제무역의 새 질서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과 대척점에 설 것으로 보였던 EU가 오히려 미국처럼 관세 장벽을 높이는 선택을 한 점에서 파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허 교수는 “EU는 미국의 보호무역을 비판하지만, 실제 정책은 늘 유사한 궤적을 밟아왔다”며 “지금 EU는 철강 관세뿐만 아니라 디지털서비스법(DMA),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으로 거대한 규제의 성벽을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흐름은 철강·알루미늄 산업을 넘어 전략산업 전반으로 퍼질 조짐도 보인다. 미국이 ‘핵심 공급망 재편’을 명분으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에까지 관세 확대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EU 역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유사 제도 도입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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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세주르네 EU 집행위원회 산업전략 담당 상임부집행위원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 철강 과잉공급에 따른 불공정 무역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세계 정치 환경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극우세력의 부상과 반이민 정서가 보호무역주의를 자극하고 있다”며 “정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 흐름은 일시적 대응이 아니라 장기 트렌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흐름은 세계 경제 전반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이날 보고서에서 “관세 인상 조치가 내년 세계 무역 성장률 둔화(0.5%)의 주요 원인”이라며 “보호무역 확산이 글로벌 경기 회복세를 약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세계 교역은 반도체·AI(인공지능) 수요 덕에 2.4% 성장세를 보였지만, 내년부터는 관세 충격이 본격화하며 교역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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