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악몽의 기수열외? 전역 두달 앞둔 병장 '안타까운 죽음&a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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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강원도 인제군 육군 과학화훈련단(KCTC) 도시지역훈련장에서 열린 제3회 국제 과학화전투 경연대회(K-ICTC)에서 다국적 연합군 장병들이 건물 내부 대항군과 교전하고 있다.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육군수사단, 가혹 행위 조사 중
제대를 두 달가량 앞두고 전북 진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육군 병장이 생전 부대에서 이른바 ‘기수 열외’로 불리는 가혹 행위를 당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해당 부대 측은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도 유족에게 알리지 않아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12일 육군 등에 따르면 육군수사단은 임실 모 부대 소속 병장 A씨(21)의 죽음과 부대 내 가혹 행위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지난해 입대한 A씨는 지난달 18일 오전 5시쯤 진안군 한 아파트 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현장은 A씨 부대에서 27㎞ 떨어진 곳으로, A씨는 진안에 연고가 없었다. 경찰은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육군수사단에 사건을 넘겼다. 오는 12월 전역할 예정이던 A씨는 숨지기 전 부대를 무단으로 이탈한 것으로 조사됐다.
육군수사단 조사 결과 A씨는 사망 당일 새벽에 부모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군대에서 적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취지다. 육군수사단은 A씨 휴대전화로 생전에 A씨가 온라인 단체 채팅방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확인했다. “간부가 괴롭힌다” “병사들이 ‘(휴대전화) 충전기 셔틀’을 시킨다” 등 기수 열외 정황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수 열외는 군대에서 특정 병사를 집단으로 따돌리고, 기수(군번)에서 제외해 부대원 모두가 그 병사를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악습을 말한다. 육군수사단은 “부대원 전체가 A씨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부대에서 A씨가 기수 열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와 같은 전·현직 병사들의 진술도 확보했다.

지난 7월 유격 훈련 중인 병사들이 경사판을 오르내리고 있다.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고위 간부 “비관 자살 추정”…유족 “세 차례 가혹행위”
일례로 고참급인 A씨의 침상은 내무반 출입구 맨 앞쪽에 배치돼 있었다. 유족 측은 “통상 병장부터 계급순으로 내무반 안쪽에 자리 잡는 것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생활관을 찾은 유족은 A씨 침대 매트에 구멍이 나고, 침상 주변에 전역한 병사들의 배낭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A씨 유족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A씨가 생전에 부대원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지휘관들이 왜 이를 방치했는지 원망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부대 측은 “지난달 훈련 때문에 생활관을 바꾸는 과정에서 부대원끼리 자유롭게 침상 위치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A씨 부대 한 고위 간부는 사건 당일 A씨 아버지에게 전화해 “A씨가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같은 날 부대 내 다른 간부들도 “A씨가 군 생활 중 다툰 상황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육군수사단이 중간 수사 결과를 유족에게 브리핑할 때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A씨가 자대 배치 이후 이등병 때부터 지난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가혹 행위를 당했고, 부대 측은 가해 병사들을 전출시키거나 부대 내에서 격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 부대 측은 극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한 부대원은 A씨 유족과의 면담에서 “우리는 즐겁게 지내고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일 대구 수성구 수성못 인근에서 현역 육군 대위가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된 가운데 사건 현장에서 육군수사단과 경찰 과학수사대 등이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직권남용·협박 등 부사관 경찰에 고소
A씨 유족은 A씨 부대 부사관 B씨를 직권남용·협박 혐의로 전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 고소할 예정이다. 고소장엔 B씨가 사건 전날 A씨를 크게 혼내면서 “다음 날 징계하겠다”고 압박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A씨 시신은 현재 경기 성남 육군수도병원 냉동고에 안치돼 있다. A씨 유족은 장례 절차를 미룬 채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A씨 유족은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 제대를 코앞에 둔 시점에 허망하게 죽었다”며 “군대에서 벌어진 일종의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집단 따돌림에 적극 가담했거나 이를 방조한 지휘관과 병사 전체를 조사해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부대 관계자는 “수사 중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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