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3040 작가들이 말하는 희곡의 맛...“무대는 상상하는 무엇이든 이뤄질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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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을 두는 희곡을 쓰기 싫었어요.”

국립극단 희곡 공모 수상자들이 전하는 희곡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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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립극단 창작 희곡 신작 공모에서 당선된 세명의 작가. 이들이 쓴 작품은 지난달 26~28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낭독공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랐다. 왼쪽부터 배해률, 김주희, 윤지영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 15년 만에 부활한 국립극단 창작 희곡 현상 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김주희(34) 작가의 말이다.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연극 대본이다. 무대화하기 어려운 소재는 다루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김 작가는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무대에서 좀 더 많이 구현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무대에서 어디까지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국립극단은 지난해 말 창작 희곡 신작 공모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된 세 작품을 지난달 26~28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낭독공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어 지난달 26일 수상작 세 희곡을 모은 『2024 창작희곡 공모 선정작』을 출간했다.

세 작품의 작가를 지난달 25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김주희는 ‘역행기’로 대상을 받았다. 수메르 신화 ‘인안나의 명계하강’을 모티브로 했다. 과거와 미래를 교차하며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서로를 구원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이 작품에 대상을 준 심사진은 “‘역행기’는 상상적 공간의 규모 등을 고려할 때 대작이라 할 작품”이라며 “이 작품의 무대적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무대적 구현의 어려움이 기쁜 도전이 될만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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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립극단 창작 희곡 신작 공모에서 당선된 세명의 작가. 이들이 쓴 작품은 국립극단 희곡선으로 발간돼 독자들과 만난다. 왼쪽부터 배해률, 김주희, 윤지영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작품은 내년도 국립극단 레퍼토리에 포함돼 무대에 오른다. 김주희가 자신의 희곡을 무대화할 제작진에 도전 과제를 던짐 셈. 그는 “희곡이 무대 위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제가 가지지 못했던 상상력을 연출자와 배우, 스태프 등의 작업을 통해 느낄 때 이야기가 더 확장하는 느낌이 든다”라며 “‘역행기’가 어떻게 무대 위에 실현될지 기대된다”라고 웃었다. 김주희는 2015년 극작 활동을 시작해 ‘어느 날 문을 열고’, ‘식탁’ 등의 희곡을 썼다. 지난 2022년 데뷔 10년 이내 유망한 예술가를 지원하는 서울문화재단 ‘비넥스트(BENEXT)’에 선정됐다.

이번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은 윤지영(45) 작가도 희곡의 무한한 상상력에 매료됐다고 했다.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장흥곡’이 당선되며 등단한 그는 “물소리, 바람 소리도 만들면 된다. 무대는 상상하는 모든 게 이뤄지는 공간”이라며 “희곡을 쓰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지영의 우수상 수상 작품은 ‘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 사건을 배경으로 80대 노인과 그의 12세 어린 시절을 그렸다.

여순 사건을 겪은 그의 친할아버지가 작품을 쓰는 계기가 됐다. 윤지영은 “알지 않아도 될 것들이 영상을 통해 쏟아지는 시대에 한 번쯤은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와 같은 아픔을 삭이며 살았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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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창작희곡 현상 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김주희 작가의 '역행기'가 지난달 28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낭독공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랐다. 사진 국립극단

역시 우수상을 받은 배해률(33) 작가는 희곡에 대해 “내 이야기가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장르”라고 정의했다. 그는 “소설의 경우 독자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지만, 희곡은 무대로 이어짐으로써 나에게서 떠난 이야기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2021년 벽산문화상, 이듬해 동아연극상작품상을 받은 배 작가는 이번 공모에서 일제 강점기 성소수자를 다룬 ‘야견들’을 제출해 수상했다. 배해률은 “퀴어(성 소수자)는 역사 속 어느 때나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라며 “엄혹한 시절의 폭력 속에서도 여전히 ‘비정상성’으로 치부된 이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그렸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은 지난해 대상 1편 3000만원, 우수상 2편 1000만원씩 총 50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15년 만에 현상 희곡 신작 공모를 부활시켰다. 현재 미발표 희곡 공모 중 최대 상금 규모다. 1957년 시작된 국립극단의 창작희곡 현상 공모는 ‘딸들, 연애 자유를 구가하다’(1957), ‘만선’(1964), ‘가족’(1957) 등 국립극단의 주요 레퍼토리 작품을 발굴했다.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국립극단의 이름을 내걸고 무대에 서는 이 희곡들이 한국 연극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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